가족이 독박 쓰는 정신질환자 관리···“사법입원 등 국가책임제 도입 필요”
서현역 참사 계기 중증정신질환자 관리 ‘주목’ 현행 보호의무자 제도 환자 가족 부담 가중 “사법입원·정신건강심판원 등 국가책임 강화” 환자인권 쟁점, 정부·국회도 관련 논의 본격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서현역 흉기난동 참사를 계기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관리를 강화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가족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부담을 모두 짊어지는 보호의무자 제도를 법원이나 행정당국이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단 것이다. 정부와 국회도 관련 제도를 살펴보기 시작한 가운데 환자 인권 보호, 제반 인프라 구축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단 조언이 제기된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20대 남성이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으로 1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단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법상 중증 정신질환자는 보호의무자 2명 동의 및 전문의 2명 진단이 있어야 환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런 절차를 겨쳐 정신질환자가 강제치료를 받도록 하는게 쉽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경찰이나 소방,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을 시킬 방법은 매우 제한돼 있다. 자타해위험이 큰 경우에만 전문의 의뢰를 거쳐 정신질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경찰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환자 설득밖에 없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은 자타해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기관 이송책임은 경찰과 소방당국에 부여하고 있다. 일본은 신고접수시 지자체가 전문의를 집으로 보내고 공무원과 함께 방문해 진단토록 하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둔 가족들의 부담이 큰 실정이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관계자는 “환자의 자의가 아닌 치료나 호송에 있어 현장에서의 판단, 실행, 비용 부담까지 모두 가족, 보호의무자가 부담해야 한다”며 “가족의 역할은 환자가 겪는 고통을 공감하고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기에 강제 입원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모두 지는 부분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에 있어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를 폐지하고 사법입원, 정신건강심판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인권과 치료가 함께 보장되는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법입원이나 정신건강심판원 제도는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제도로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에 대해 법원이나 행정기관이 나서 직접 환자 얘기를 듣고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 학회 관계자는 “해외정신건강법 체계의 특징은 자타해우려가 있을 경우 전문가 평가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외래치료지원제를 통해 조기치료를 권장하고 입원을 최소화해 인권과 안전 그리고 치료를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의료 시스템도 확충해야 한단 의견도 나온다. 국내 정신병원 병상은 낮은 의료수가 등의 이유로 2017년 6만7000개에서 올해 5만3000개로 급감했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중 정신과 입원실을 유지하는 병원은 약 25%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관계자는 “급성기 정신질환을 치료하는데 들어가는 인력과 의료서비스에 턱없이 모자라는 비현실적인 수가시스템으로 급성기 정신질환을 담당하려는 병원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며 “그 피해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서현역 참사 이후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제, 구체적으로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환자 인권 보호, 의료계와 법조계의 열악한 전문인력 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금 참사 관련 대책 얘기가 나오곤 있지만 아직 준비단계이고 확정된 부분은 없다”며 “현재 나오는 얘기들도 논의 과정에서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도 정신의료시스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현행 보호입원제 개선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질환자의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보호의무자 제도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며 “중증 정신질환자의 조기발견, 조기치료, 적정한 외래와 입원치료, 재활과 사회복귀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신 의원은 또 “현재 보호입원, 입원적합성심사제도 등이 취지에 맞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보완을 위해 기존 제도의 철저한 분석과 객관적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