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리스크 해소 나선 철강업계, 자회사 설립 속도 내나

현대제철, 당진·인천·포항 이어 울산도?···자회사 설립 움직임에 노조 촉각 지난해 포스코 광양제철소 근로자 59명 직고용 판결···철강업계 부담 가중 예상 노동계 "원청 직고용 아닌 자회사 통한 꼼수···처우 개선 미흡"

2023-07-17     정용석 기자
현대제철 울산공장 전경. /사진=현대제철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철강업계가 자회사를 통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고용하며 불법파견 리스크를 덜어내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정비 자회사를, 현대제철은 지난해 당진·인천·순천 등 사업장별 계열사를 설립해 하청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했다. 철강업계 부담도 가중될 전망인데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노동계는 “본사 정규직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17일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제철은 울산공장을 자회사로 분리,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협력사 직원을 고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다만 현대제철 관계자는 “울산공장 자회사 설립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했다.

현대제철이 울산공장을 자회사로 분리한다면 단일 공장 기준으로 당진, 인천, 포항에 이어 4번째 자회사가 탄생한다. 현대제철은 지난 2021년 자회사인 현대ITC(당진), 현대ISC(인천), 현대IMC(초항)를 설립하고 사내 협력사들을 직고용했다. 

포스코도 자회사를 활용해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고용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기존 26개 정비 협력사를 6개 자회사로 통합 출범했다. 자회사 설립 발표 3개월 만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 일해왔던 정비 하청 협력사 직원 4500여명을 직고용했다는 게 포스코 측 설명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품 출하장. /사진=연합뉴스

철강업계가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직고용에 나서는 건 제조업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에서 법원이 잇달아 근로자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다. 현행법은 제조업에서 파견을 금지하며, 파견이 허용된 업종도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면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2년 넘게 일한 협력업체 근로자 59명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포스코와 협력업체 사이 체결된 용역도급계약은 실질적으로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12월 인천지법 11민사부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내하청 근로자 925명이 원청인 현대제철 근로자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기업들은 자회사 채용의 조건으로 근로자지위확인 소 취하를 요구하는 등 법적 리스크를 온전히 떨쳐내려 한다.

다만 자회사 설립에 따라 철강업계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로, 수소환원제철 관련 투자비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인건비 상승 폭탄도 떠안게 되면서다. 임금 상승이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 청년 세대의 취업난이 더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최근 KG스틸(옛 동부제철)은 자회사 KG스틸S&D를 설립하고 협력사 직고용에 나서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7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이러한 신설법인 설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회사 설립을 통해 원청의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하고 자회사 직원에겐 원청에 비해 적은 보수를 지급한다는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자회사 채용을 통해 본사의 복지체계를 따라간다고 하지만 임금 면에서 격차가 발생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현대제철 자회사 노동자들은 본사 정규직 임금의 80%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또한 직접 고용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지난 4월 "정비 자회사는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는 꼼수"라며 "전문성 강화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 자회사 설립이 아닌 포스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다만 포스코는 지난해 수해 복구를 계기로 더 전문화된 정비 체제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파견법 개정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보이면서 무리한 사내 하청 직고용 행태가 개선될 여지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4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불법 파견 등과 관련한 컨설팅 사업에 대한 사전 진단 성격의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파견업종 확대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