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압박'에 전기로 늘리는 포스코·현대제철···'수익성 우려'도 커져
전기로 늘리는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철강업계, 전기료 인상 따른 비용 부담 가중 제품가 인상 가능성도···"정부 지원 절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탄소규제 움직임에 따라 관련 기업들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중간 단계로 전기로 도입을 늘리고 있다. 철강사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투자에 나서는 나섬에 따라 수익성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업계는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모아 말한다.
◇전기요금 상승 유력···철강사, 수익성 악화 우려
9일 정부 및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오는 10∼11일께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요금 인상 폭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현재 1·2월 누계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149.7원인 전기요금을 kWh당 7원을 올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지난 1분기 전기요금은 역대 분기별 최고 인상 폭인 kWh당 13.1원이 올랐다.
잇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철강사의 원가 부담으로 작용해 영업익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업체는 탄소 배출 관련 규제가 추진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전기로를 도입했거나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올해 주요 철강사들의 전기료 부담 규모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가장 많은 원가 상승이 예상되는 건 국내 최대 전기로 운용 업체인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1월 2022년 4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전기요금이 kWh 당 1원 오르면 연간 원가 부담이 100억원가량 오른다”고 했다.
조만간 결정될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외하더라도 지난 1년간 상반기 산업용 전기요금은 최대 41.6원 비싸졌다. 현대제철 쪽 주장에 따르면 연간 최대 4100억원 가량의 요금 부담이 더해진다. 지난해 부담한 전기료가 6000억원임을 감안하면 올해 지출하는 전기료만 조 단위 규모가 된다.
동국제강·세아베스틸 등 전기로를 운용하는 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전력비용으로 2827억원을 지출을 썼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전년도 대비 11.5% 는 데 따라 전력비용도 15.0% 늘었다. 한전이 제시한 올해 전기료 인상 요인(kWh당 51.6원) 수준의 요금 인상이 이어지면 올해 전력비용은 3000억원을 훌쩍 넘게 된다.
◇비싼 운용비에도 전기로 늘리는 이유는
비싼 운용비가 들지만, 전기로를 줄일 수도 없다. 당장 2026년부터 시행되는 EU의 CBAM이 이유다. CBAM이란 수입품의 탄소 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해 탄소 가격을 추가로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 등이 우선 적용 업종이므로 철강사들은 당장 탄소 저감을 위해 전기로를 속속 도입 중이다.
전기로는 고로보다 친환경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기존 고로와 달리 철스크랩(고철)을 재활용해 철강을 생산한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고로의 약 25% 수준이다.
업계는 기존 고로를 전기로로 전부 대체하진 않을 계획이다. 장기적으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환원제철 생산체제로 전환해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다만 현대제철·포스코 등은 수소환원제철 도입 시기를 2040년 이후로 보고 있어, 한동안 CBAM등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은 전기로가 도맡을 예정이다.
기업들의 신규 투자 계획도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약 6000억원을 투자해 광양제철소에 연산 250만톤(t) 규모의 전기로를 신설하기로 했다. 전기로는 CBAM이 도입되는 2026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현대제철은 기존 전기로 생산 노하우를 통해 신 전기로에 탄소중립 철강 생산체제 ‘하이큐브(Hy-Cube)’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다. 이 기술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이 약 40% 저감된 강재를 시장에 선보인다.
◇원가부담,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나
전기요금 상승 등 원가 부담이 국내 철강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까. 아직은 전기요금이 주요국 수준에 한참 못 미쳐 당장은 부담이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지난 8일 한전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 부문 전기요금의 경우 한국을 지수 100으로 놓고 볼 때 일본 154, 영국 197, 미국 76으로 미국 다음으로 저렴했다.
전기요금 상승이 지속된다면 철강업계도 제품가 상승 등 자구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국내 철강업계의 업황이 부진한 상황임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인상폭을 결정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면서 “원가 상승을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지만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가장 기본적 방안이다”고 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친환경 규제에 따라 철강업계에 막대한 설비투자·R&D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겠지만 설비·기술 투자 비용은 개별 철강업체가 부담하고 있다”면서 “친환경 제철소 전환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한 만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