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저는 구제 못받나요?’···정부 해석따라 특별법 지원여부 갸우뚱

범정부, 27일 전세사기 피해 지원 방안 발표 임차인 우선매수권 부여·매수 비희망 임차인에게는 LH가 주택 매입해 피해자에 임대 저리 대출 지원 및 세금 면제·감면있지만 특별법 적용 대상 되려면 6가지 조건 다 갖춰야

2023-04-27     노경은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지원책을 발표했다. 피해를 입은 임차인에게 경공매 위기에 처한 주택의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매수를 원치 않는 임차인에게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낙찰을 원치 않는 피해자의 경매 우선매수권을 이양받아 해당 주택을 매입한 뒤 매입임대주택으로 피해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업계에서는 공공의 직접적 지원보전이나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조치 등 파격혜택은 없었지만, 피해자가 살던 주택에서 계속 거주가 가능하도록 범부처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해 임차인 퇴거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됐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특별법 혜택을 받기 위해선 국토교통부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의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곳의 해석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지는 만큼 일부 논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를 표한다.

◇주거권 보장에 저리 낙찰자금 대출 지원·LTV 완화로 낙찰가 전액 대출도 가능

27일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에 따르면 먼저 피해자로 인정되면 먼저 직접 경매 유예와 정지를 신청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경매 유예로 살던 집에서 당장 퇴거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피해자는 살던 집을 매수하거나 임대로 거주하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먼저 경매에서 임차 주택을 떠안으려는 피해자에게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임차인 우선매수권이란 세입자가 살고 있는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 제 3자에게 낙찰됐더라도 세입자가 해당 낙찰 금액을 법원에 내면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다. 최고가 낙찰액과 같은 가격에 주택을 살 수 있다. 정부는 주택구매를 위해 저리로 낙찰 자금 대출을 지원하는데, 디딤돌대출에 전용상품을 만들어 연 금리 1.85∼2.70%에 최대 4억원까지 대출해준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대출 규제도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해준다. 특히 4억원 한도 내에서는 LTV 100%를 적용해 낙찰가 전액을 대출받는 것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사고 발생 주택이 아닌 신규 주택을 구입할 때는 LTV 80%를 적용한다. DSR과 DTI(총부채상환비율)는 적용하지 않는다.

이밖에 정부는 피해자가 임차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취득세를 200만원 한도 내에서 면제하고, 3년간 재산세도 감면해 준다.

만일 피해자가 주택 매수를 원치 않는다면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한 뒤 매입임대주택으로 피해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매입임대주택의 입주 요건은 까다롭지만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는 소득·자산요건과 관계없이 입주 자격을 부여한다. LH 매입임대는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최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고 임대료는 시세의 30∼50% 수준이다.

이밖에 정부는 재난·재해 긴급복지 지원제도를 전세사기 피해 가구에도 적용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생계비(월 62만원), 주거비(월 40만원)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연 3% 금리의 신용대출을 최대 1200만원 한도 내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지원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에 대해 “임대차가 사인 간의 계약이다보니 정부가 나서서 피해금을 물어주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책은 당장의 주거안정 지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정책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역시 “피해자의 주거연속성을 제공하며 저렴한 임대료와 장기 거주를 통해 손해 본 임대 보증금을 상쇄하거나 간접 보전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27일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지원 방안 / 자료=국토부

 

◇집주인의 전세사기 기망 의도 안 보인다면? 특별법 혜택 못 받을수도

다만 특별법의 특성상 지원대상과 적용기한(시행 후 2년 유효)에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 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 ▲수사가 개시되는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임차인만 특별법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에 대해 함 랩장은 “비교적 요건이 명확한 1~3번을 제외한 4~6번에 대해선 국토부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의 해석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피해자들 역시 대책에 대해 한시적인 특별법 적용 요건이 까다롭고 모호해 답답하다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전세사기로 보려면 집주인의 의도가 있었는지가 중요한데,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및 갭투자 실패와 전세사기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경기도 화성 동탄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 의심 사례는 계획된 전세사기였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동탄 오피스텔 전세 임대인 부부는 앞서 임차인들에게 ‘세금 문제로 파산 절차를 진행하게 됐으니 오피스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한 임차인은 “5번의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라는 항목에서 '다수의 피해자'의 기준이 뭔지 모호하다. 또한 전세사기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는가”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