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잔고 100兆’ 방위산업, 기술 유출·해킹 복병···민관 협업으로 강경 대응
5~6년간 생산라인 가동 가능한 일감···우수한 성능·품질에 계약량↑ 韓 기술력 노리는 해킹 시도 급증, 기술별 우선순위 설정해 대비 만전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국내 방위산업이 연이어 대형 빅딜을 성공시키며 수주잔고가 100조원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기에 대한 우수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며, 많은 국가들과 계약을 체결한 덕분이다. 단, 국내 방산의 기술력을 노린 유출·해킹 건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산업 성장의 복병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현대로템 등이 주축이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기준 누적 수주잔액은 94조7990억원 규모다.
기업별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52조6590억원 ▲KAI 24조6000억원 ▲LIG넥스원 12조2650억원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 부문 5조2750억원 등이다. 각 사 모두 역대 최대 수주잔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장기화에 폴란드와 튀르키예 등 유럽 국가들도 국방력 증강에 나서면서 계약 물량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기존 매출과 비교하면 현재까지의 수주잔고는 향후 5~6년간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일감이다.
방산은 산업 특성상 국내에선 정부 및 방위사업청(방사청)의 국방 정책에 의해 실적이 결정되는 구조여서, 매출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해외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추가 이익이 발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무기 및 관련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뛰어난 성능과 품질 대비 합리적인 가격 덕분”이라며 “납기일 준수와 안정적인 후속 지원, 계약상 명시된 기술이전 등도 신규 계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계약 및 일감, 기술력 등에 비례해 합법적인 이전을 제외하고 핵심 기술을 유출하거나 해킹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점은 산업 성장의 걸림돌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따르면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 서버에 대한 해킹 시도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1970건에 달하던 이들 기관에 대한 해킹 시도는 2021년 들어 5250건으로 3280건(166.5%) 늘었다.
방사청과 ADD는 우리 군 무기체계의 설계부터 연구개발(R&D), 생산관리에 이르기까지 방위사업 전반을 책임지는 정부의 핵심기관이다. 해킹 공격 유형은 무단 시스템 정보 수집 시도가 가장 많았다.
해킹 공격을 가장 많이 시도한 인터넷 프로토콜(IP)의 국가는 중국으로 나타났다. 2018년 562건이던 중국 IP의 해킹 시도는 2021년 3003건으로 약 6배 늘었다. 이어 미국과 한국, 러시아 순으로 해킹 건수가 많다.
정부 및 군 기관이 아닌 방산기업에 대한 해킹 공격 시도는 연평균 120만건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에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제작 기업과 3000톤(t)급 최신 잠수함 건조 업체 등에 대한 해킹이 적발된 바 있다. 주로 북한이 중국 등 제3국의 IP를 경유해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방사청 등 정부 기관은 확고한 군사보안태세를 정립하기 위해 민관 협업으로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방위사업에 대한 기술 유출 및 해킹은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국방력 저하로 직결되는 만큼 관련 기업의 안보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방사청 및 ADD, 방산기업 등을 보호하겠다는 목표에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보호에 집중할 방침이다. 방사청은 한화 등 대형 방산기업과 함께 관련 중소·중견기업 역시 같은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주체인 만큼 기술유출방지시스템 구축 지원 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한희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해킹을 시도하는 이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선적으로 지켜야할 방산 기술력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고 전했다.
이어 “민관군이 협력해 사이버 안보 태세를 더욱 강화하고, 해킹을 당했다면 빠른 시간 안에 중요 업무가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복원력 강화 전략’도 중요하다”며 “100% 보안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