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증설 시동 걸린 삼성SDI···올해 SK온과 치열한 경쟁 예고
삼성SDI, 지난해 연구개발비 1조원 넘겨···차세대 배터리 기술 바탕 외연 확장 노려 SK온, 국내 3사 가운데 가장 공격적 증설 투자···자금 확보와 수율 개선이 과제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삼성SDI가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1조원을 넘게 지출하며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가운데 가장 많은 연구개발비를 지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수익성 위주의 보수적 투자 기조를 보인 삼성SDI가 쌓아온 기술력을 토대로 본격 증설에 나서면서 SK온과 국내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탄탄한 기술력·재무구조···삼성SDI, 적극 외연 확장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SDI는 연구개발비로 1조764억원을 지출했다. 역대 최대치다. 전년 연구개발비(8776억원)와 비교해 22.6% 오른 수치다.
삼성SDI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등록한 특허 수만 1462개에 달한다. 비용 상당 부분은 전기차용 중대형 전지 분야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연구에서 국내 3사 중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업체 중 가장 많은 전고체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며 "상용화 시기도 3사 중에선 가장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 단위 연구개발비를 감당할 건전한 재무구조도 갖췄다. 지난해 삼성SDI의 부채비율은 75.7%로 LG에너지솔루션(213.0%), SK온(134.0%)로 경쟁사 대비 가장 우량한 재무구조를 보이고 있다. 설비투자금(CAPAX)이 지속 증가하고 있으나 영업활동현금흐름 또한 증가하는 점은 긍정적이다.
올해부터는 외연 확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시행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투자 적기를 고심하던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의 결정을 앞당겼다. 최 사장은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 기조를 바탕으로 쌓아온 기술력과 안정적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해외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과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생산 능력이나 투자 규모는 양사가 추후 정할 예정이나, 업계는 30~50기가와트시(GWh)규모로 양사가 총 3~5조원 규모를 투자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프로젝트로는 천안사업장에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 중이며 수원사업장에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생산라인을 짓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기존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삼성SDI가 뒤늦게 증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SK온과 국내 배터리 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 업체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도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삼성SDI가 4위(10.8%)로 5위 SK온(9.2%)을 따돌렸다. 지난해 1분기에는 SK온이 4위(14.6%), 삼성SDI가 5위(8.3%)였다.
삼성SDI가 '수익성' '질적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면 그간 SK온은 '공격적 확장'에 힘을 싣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보다 뒤늦게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시장 진입이 빠른 경쟁사들과 생산능력(CAPA) 싸움에서 밀리기 않기 위해서다. SK온은 생산능력을 2025년 220GWh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계획된 투자 규모만 23조원이다.
양사의 전략 차이는 SK온의 연구개발비 지출에서도 드러난다. 삼성SDI가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사용한 데 반해 SK온은 지난해 3분기까지 1039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했다. 삼성SDI의 연구개발비는 에너지솔루션부문(배터리)과 전자재료부문(디스플레이·반도체 소재)의 합산값이긴 하지만 상당 부분 배터리 관련 연구개발비로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SK온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보수적이다.
양사의 전략 차이에 따른 성과는 올해부터 가시화될 전망이다. 삼성SDI는 생산능력 확충과 더불어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 생산에 돌입한다. 기존 고객사와 추가 수주 가능성도 점처진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수익성 위주의 수주전략으로 보수적인 성장 전략을 펼쳐온 삼성SDI의 수주 행보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며 “GM, 볼보, BMW 등으로부터 올해 추가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SK온은 수율과 자금 확보라는 과제를 해결하며 올해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방침이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7조원 상당을 더 투자하기로 했고 국내 기관, 해외 투자자들을 상대로 자금 모집 협상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