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조선업계, 후판값 줄다리기 돌입···“생명줄 달렸다”

후판, 선박 원가 및 제철소 제조 물량의 20% 비중 차지 철강 “20만~30만원↑” vs 조선 “동결 혹은 10만원 인상”

2023-02-28     유호승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생산된 선박용 후판. / 사진=포스코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철강 및 조선업계가 올해 상반기 선박용 후판 가격을 두고 협상을 시작했다. 양 측은 협상 테이블에는 앉았지만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합의점 도출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후판값에 각 산업의 생명줄이 달렸다는 인식 아래 양보와 타협 없는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다.

후판은 선박의 갑판과 외벽에 주로 사용하는 두께 6mm 이상의 강판이다. 전체 선박 건조 비용의 약 20%를 차지해 조선사 수익성을 좌우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후판 가격이 톤당 1만원만 상승해도 컨테이너선은 5억원,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는 3억6000만원 수준의 원가가 오른다.

조선사뿐만 아니라, 제철소에서도 후판의 비중은 상당하다. 전체 제조 물량 중 20%가 후판이다. 그만큼 후판 가격은 철강과 조선 업계 모두에 민감한 사안이다.

두 업계는 매년 상·하반기 두차례 협상을 통해 후판 가격을 정한다. 앞서 조선업계는 2021년 상·하반기, 2022년 상반기 등 세 차례 양보해 후판 가격 인상에 동의했다. 이 기간 2020년 하반기 65만원이던 후판값은 2022년 상반기 120만원으로 두 배가량 올랐다. 55만원이 올라 조선사 입장에선 컨테이너선 1척 기준 275억원의 원가가 더 투입된 것이다.

반면 지난해 하반기에는 가격 인하에 성공했다. 상반기 대비 톤당 10만원 내린 110만원에 합의했다. 당시 철광석 가격은 톤당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후판값을 내리기로 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러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연말까지 협상이 이어지며 자칫하면 해를 넘길 뻔 했다. 철광석 가격이 낮아지며 철강업계의 실적도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가격인하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는 상황이 다르다. 현재 철광석 가격은 톤당 130달러 수준이다. 짧은 시간에 30% 정도 값이 올랐다. 중국이 코로나19 봉쇄 조치 완화로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에 나서면서 철광석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서다. 아울러 당분간 가격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에 후판값을 인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후판 생산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선 톤당 20만~30만원은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20만~30만원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내 조선소들은 최근 들어 흑자 전환을 시작하며 실적이 회복되는 양상이다. 또 수주잔고가 포화인 상황에서 인상된 후판으로 선박 건조에 돌입하면 기존 목표보다 마진이 적게 남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조선사들은 동결이나 최대 10만원 인상에서 후판값이 결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결과는 앞으로의 후판값 결정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일감포화로 어느 때보다 도크에서 건조되는 선박이 많은 시기에 후판 가격이 계속 오른다면 실적회복이 어려워져 최소한의 출혈로 최대한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인상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