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이슈에 떠오른 지역별 차등요금제, 전기료에 발목 잡히나
국회 중심으로 법안 논의 본격화···“배전·송전료 각각 반영, 기피시설 지역 지원 바람직” “미·일 등 해외 도입국, 우리나라와는 상황 달라”···정부도 갈등 우려에 논의 움직임 신중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전기료를 지역별로 차등 부과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단일요금제로 전력과잉지역이 상대적으로 전기요금을 더 부담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에 따른 대안으로 최근 전기요금 급등과 맞물려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커진 전기료 이슈가 추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차등요금제 시행시 부담이 커질 수도권의 반발도 거세질 것이란 지적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부과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원전 등 기피시설인 발전소 인근 지역은 전기요금을 저렴하게 매기는 내용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1월 박수영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은 같은달 양이원영 의원과 이달초 신정훈 의원이 관련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중 양이원영 의원 법안은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정돼 산업통상자원 특허소위 심사에 들어갔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발전소가 있는 부산, 울산, 경북, 전남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 필요성을 적극 제시하고 있다. 발전소 가동에 따른 환경오염, 재산적 손해에 더해 수도권 지역에 비해 전기요금을 불필요하게 더 부담하고 있단 분석에 따른 대응이다.
수도권 지역은 전력 생산량이 소비량에 비해 적어 필요 전력 일부를 발전소가 설치된 다른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다. 그런데 이 원거리 송전에 따른 전기공급 비용은 수도권 뿐 아니라 발전소 지역도 부담하고 있어 발전소 지역을 중심으로 불합리하단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이들 지역의 차등요금제 도입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이에 한국전력공사도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타당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현재 초기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 차등 방안 등 구체적 내용이 나온 건 아니다”며 “도입 방안이나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원가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전기요금은 지역별로 송전, 배전 요금이 다르다. 지역간 송전, 배전 요금 격차가 서로 상쇄되는 부분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배전과 송전 요금을 각각 계산해 요금에 반영하는 것이 적절하단 분석이다.
김진우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전기요금은 사회정책적인 면도 가미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며 “완전한 시장 원칙 하에 요금을 산정하는 방향으로 한꺼번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그쪽으로 이동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는데 공감하지만, 수용성 문제로 인해 제도 시행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전기요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지역 주민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단 지적이다. 특히 전기요금 급등 이슈가 불거진 현 시점에선 시행이 더욱 어렵단 관측이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현재 전기요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발전소 인근 지역만 전기요금을 깎아주면 한전 적자가 더 가중된다”며 “그래서 발전소 인근 전기요금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수도권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단계 더 나가 한전이 발전소에서 전기를 구입하는 가격이 발전 과잉 지역은 싸고 수도권은 비싸야 한다. 즉 발전의 차등요금제와 연계돼야 한다”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한전의 재무 건전성 때문에 제도의 지속성이 담보 받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소비자가 전기요금을 더 내거나 발전 과잉지역 전력도매가격(SMP)가 떨어져야 한전 재무구조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도입될 수 있단 설명이다.
지역별 차등요금제 설계를 잘하면 지역간 요금차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지역간 요금이 다르단 자체가 국민들이 수용하기 쉽지 않은 선택지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 전 원장은 “송전, 배전 부분을 원가주의로 하는 것과 별개로 발전소 주변 지역에 지원 형태로 차감을 해주는 것은 필요하다”며 “송전, 배전 요금, 지역 내 시설에 대한 지원 등을 모두 합쳐놓고 보면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실제 지역간 요금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금 차이가 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수용성이 떨어지는 부분이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 간 송전, 배전 요금을 국민이 수용할 정도로 정확히 계산해 요금을 부과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단 지적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 주요국가들은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부과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발전회사와 판매회사가 구분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지역별로 차등요금을 책정하기 수월하다. 한전이 전국을 커버하는 독점 구조인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전력산업 구조가 경직된 국가에서 국토가 좁고 한 회사가 전체를 담당하는 부분에서는 전기요금을 차별화하는 부분이 사회적 수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며 “제도를 고칠 필요는 있지만 빠른시일 내에 추진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추진하는데 조심스런 입장이다. 도입 방향을 검토한 적이 없단 게 공식 입장이다. 특히 전기료 인상 이슈에 민감한 현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갈등만 야기할 수 있단 우려를 내비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관련해서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건 없다”며 “외부에서 건의가 많은데 누구를 낮춰주면 다른 누군가는 올려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할 지도 불명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의 경우 회사가 달라 요금이 다른 것이지 지역이 달라 요금이 다른 건 아니”라며 “우리는 회사가 한 곳인데 그 회사가 지역별로 요금을 차등하는게 맞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제기된 의견이 정부 제도 개선의 기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 연료비 인상으로 전기요금이 조금 올라도 나라가 들썩이는데 다 같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오르고 누구는 낮춘다면 과연 사회적으로 수용성이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