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소재기업 美 진출 온도 변화···‘속도전’ 대신 ‘신중론’

美 재무부, 지난해 말 IRA 가이던스 발표···핵심 광물에 양극재·음극재 등 포함 엘앤에프, SKIET 등 국내 소재 업체, 3월 IRA 최종안 발표 따라 전략 수정 가능성 높아

2023-02-14     정용석 기자
엘앤에프 연구소 전경. / 사진=엘앤에프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지난해 공격적으로 미국 내 증설 경쟁에 참여한 것과 달리, 올해는 투자 속도를 조절하며 수익성 높이기에 나섰다.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제조업체 엘앤에프,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등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일단 오는 3월 발표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시행규칙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제조에도 IRA 세제 혜택 길 열려

엘앤에프는 최근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IRA 핵심 광물 요건에 양극재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투자비용 부담이 큰 미국 진출에 대한 압박은 다소 사라졌다"고 밝혔다. IRA 대응에 있어 미국 진출이 필수 요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처럼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간 IRA 대응을 위해 미국 진출에 속도를 냈다면 지금은 IRA 세부 시행규칙이 발표되기 전까지 투자를 보류하는 모습이다.

이유는 IRA 규제 완화에 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은 양극재, 음극재 등도 IRA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미국 재무부가 공개한 IRA 가이던스는 핵심 광물의 범위를 확대했다. 전통적 광물인 리튬, 니켈, 알루미늄 등은 물론 전구체, 양극재, 음극재, 집전체 등도 핵심 광물로 포함시킬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다만 전해액과 분리막은 핵심 광물 범위에서 빠졌다.

해당 핵심 광물을 미국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에서 채굴하지 않아도 가공을 통해 50%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세재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해당 가이던스의 골자다. 엘앤에프가 중국에서 채굴·가공한 리튬을 FTA 체결국인 한국에 가져와 양극재를 만들어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소재 업체들의 투자 부담과 광물 조달 부담이 기존 예상 대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해액과 분리막만 북미 현지화한다면 (IRA의) 요구조건을 100% 만족시킬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다만 3월로 연기된 IRA 최종안 발표에서 가이던스 내용이 변경될 수도 있다. 중국 CATL이 IRA 규제를 피하는 기술합작 방식으로 미국 내 진출을 선언하면서 그 가능성이 커졌다. 자국 내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단 의지가 강한 미국은 이전 가이드라인보다 강력한 지침을 낼 것으로 보인다.

SKIET의 폴란드 분리막공장 전경. / 사진=SKIET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 "美 투자는 IRA 최종안 이후 결정"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IRA 최종안 발표 이후 구체적인 미국 투자계획을 세우겠단 입장이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변경 전 IRA 법안에 따라 미국 내 생산설비 투자가 필수적이었지만, 현재는 굳이 안 가도 되는 상황"이라며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현지 공급망 증설 요구가 있어 IRA와 상관없이 미국 진출은 한다. 다만 투자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SKIET도 미국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 3월 IRA 최종안이 나오면 미국 투자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분리막은 IRA 가이던스에서 핵심 광물로 분류되지 않아 미국 내에서 생산돼야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SKIET가 미국 내 공급망 구축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SKIET는 지난해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된 낮은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등 수익성 중심 경영에 방점을 찍었다.

SKIET 관계자는 "IRA 최종안과 더불어 북미지역 생산 경제성, 고객사와 장기공급 계약 등을 두루 고려해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LG화학도 미국 내 무리한 투자보다는 원자재 공급망 구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미래를 위한 원료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며 공급망 다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 부회장은 미국의 IRA 정책을 거론하며 "한 국가의 정책에 따라 공급망 전략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전략은 세계 3대 거대 권역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이고, 미국은 그중 한 곳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