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 기술유출, 예방책은 ‘애국심 호소’뿐?

유출 처벌 수위 높이고 국가 차원에서 퇴직 임원들 활용 방안 고민해야

2023-01-19     엄민우 기자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최근 반도체 세정장비 제조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전 연구원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기술유출을 대가로 약 1200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가적 피해는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실 기술유출 문제는 잊을 만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뉴스’다. 반도체 뿐 아니라 선박제조, LED기술 등 분야도 다양했다. 매번 피해예상 액수가 수천억, 수조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면 지금까지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해를 봐왔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처럼 사태가 반복되지만 핵심기술을 다루는 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너무도 안일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기업에서 어쩔 수 없이 옷을 벗는 퇴직 임원들은 회사에서는 더 이상 할 역할은 없지만 여전히 ‘고급인력’이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나가서 할 만한 일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현역 시절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가 잘 풀리는 경우지만 대부분은 더 일할 수 있음에도 일할 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간 회사에 몸바치다 사무실을 떠나게 되는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돈벌이가 사라졌다는 것 이상의 공허함이 남는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중국에서 수 십억원, 수 백억원을 제시하며 관련기술을 요한다면? 그것도 임원 평균 나이를 고려하면 자식들 나이로 봤을 때 한창 더 벌어야 할 나이다. 국가적으로 보면 큰 죄악이지만 가족 얼굴을 떠올리며 그 중 흔들리는 사람이 나올 수 있고, 이는 곧 국가경제 리스크가 된다.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 역시 기술유출의 표적이 된다. 오히려 보안이 약해 더욱 쉬운 공략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기술유출이라고 하면 첩보영화에서 파일이나 문서를 빼돌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냥 사람을 고용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국정원의 감시망이 있지만 사실상 당사자가 유출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막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기술 유출하는 이들을 단순히 ‘매국노’라고 비난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기술유출 시도가 그 증거다. 기술유출 유혹을 억제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리고 퇴직임원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도록 정부차원에서 이들을 활용할 만한 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억지 일자리 만들어 취업률 수치 맞추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고용정책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