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르고, 싸게···7000종 후보 물질 하루 만에 분석하는 AI, 신약 개발 가속화하나

2023-01-13     김지원 기자

[시사저널e=김지원 기자]신약개발이 가속 페달을 갖출까.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각광받는다. 신약 개발 소요 비용과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 모델을 활용해 후보 물질을 탐색하고, 타깃의 기전을 분석하는 등 신약 개발 과정을 효율화할 수 있다. 일본 제약공업협회는 AI가 도입된다면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용이 기존 1조2000억 원에서 6100억 원으로 감소한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10년 이상의 소요 기간은 3~4년으로 단축된다. 

1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 과정에서 AI 역할이 부각하고 있다. AI 활용과 관련 플랫폼 구축 등도 활발하다. 인공지능 활용 신약 개발 시장은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련 기업 수가 250개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규모 역시 급증할 것이란 예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인공지능 활용 신약 개발 시장은 2027년 35억4860만달러(5조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2019년 4억7340만 달러(6700억 원)에서 연평균 28.63%의 고속 성장이다. 

◇임상 기간 대폭 줄이는 AI···각 단계 최대 50% 단축에 비용 감소도

AI가 신약 개발 각 단계를 최대 50%까지 단축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신약 개발을 위한 첫 단계는 ‘개발 대상 물질 선정’이다. 이를 위해 ▲타깃의 선정 ▲타깃 검증 ▲스크리닝 ▲선도물질 도출 ▲선도물질 최적화를 거친다. 이 과정에는 평균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스크리닝 단계에서는 선정된 타깃을 제어하는 물질을 찾는 작업이 이뤄진다. 이를 위해 수십만 개에서 최대 수백만 개의 화합물을 스크리닝한다. 스크리닝 결과로 나온 화합물의 구조와 유사성을 찾아 범위를 좁혀 나가며, 선도물질을 도출한다. 도출한 이 선도물질을 가지고 수백 개 화합물을 합성해 전임상 개발 후보를 도출하는 단계가 선도물질 최적화다. 

이후 ▲전임상 개발 ▲임상 1상 ▲임상 2상 ▲임상 3상 등으로 이어진다. 전임상 개발은 도출한 후보물질의 유효성과 독성을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검증하는 단계다. 평균 2년여가 소요된다. 임상 1상부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안전성 검증(임상 1상), 치료 효과 탐색과 효능·용법·용량·유효성 결정(임상 2상), 다수 인원 상대로 추가 정보 및 자료 확보(임상 3상)가 주요 목표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AI 활용은 이 기간을 대폭 단축한다. 특히 초기 단계인 후보물질 발굴 기간을 줄인다. 후보물질 발굴은 수십만 개의 화합물 중 표적 단백질에 활성을 보이는 화합물을 찾아야 하는 난이도 높은 과정이다. 다차원에서 오는 각각의 데이터, 수많은 분자를 AI는 빠른 속도로 선별해낼 수 있다. AI를 활용해 수많은 다양한 약물 조합도 만든다. 이를 통해 새로운 바이오 마커나 유효물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효물질에서 선도물질을 도출하는 기간도 AI 활용 시 2달 이내로 대폭 줄어든다. 실제 네이처 바이오테크사는 46일 이내에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을 설계·합성·검증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2019년 선보이기도 했다. 

소요 비용도 감소한다. AI는 전임상 시험에서 테스트할 합성 화합물의 수를 줄임으로써 신약 개발의 R&D 비용을 감축한다. 도출한 물질이 생체에서 어떻게 활성 될지에 대한 예측도 제공한다. 아울러 해당 과정을 거친 물질은 후기 단계에서 실패하는 비율도 낮다는 설명이다. 

◇AI 활용 신약 개발 기업 속속···SK케미칼·대웅제약·GC녹십자도 사업 전개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중인 대표적인 기업은 영국 엑스사이언티아(Exscientia)다. AI 플랫폼을 신약 후보물질 발굴, 약물 설계 최적화 등에 활용하고, 새로운 약물을 설계한다. 엑스사이언티아 측은 전임상 약물 발견을 기존 방법보다 최소 75% 단축했다고 밝혔다. 미국 기업 아톰와이즈(Atomwise)도 다양한 질병의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AI플랫폼을 적용하고 있다. 아톰와이즈는 하루 만에 7000종의 물질을 분석, 에볼라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굴한 바 있다. 

최초의 AI기반 신약 개발 회사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은 AI와 약물 발견을 위한 딥러닝 기술을 개척 중이다. 섬유증을 학습한 AI를 통해 46일 만에 해당 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발굴에 성공했다. 영국 제약사 베네볼런트(Benevolent)는 AI를 이용해 기존 류미터즘 관절염 치료제인 바리시티닙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예측, 관련 치료제 실마리 제공했다. 

국내 기업중에는 SK케미칼·대웅제약·GC녹십자등이 AI 기반 신약 개발 사업을 전개 중이다. SK케미칼은 AI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춘 스탠다임·닥터노아·심플렉스·디어젠·인세리브로·온코빅스 등과 협업 관계를 구축하고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대웅제약은 AI플랫폼을 보유한 온코크로스와 협약을 맺고, 이를 활용해 신약 후보 물질의 사용범위를 확대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GC녹십자 역시 AI 신약 연구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 

◇글로벌 제약사, AI 기업과 협약···유럽선 기업·대학교 함께 프로젝트

글로벌 제약사도 AI 기업과 계약을 맺는 방법 등을 통해 관련 연구를 적극 진행하고 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는 지난 10일 영국 소재 AI 전문 스타트업 인스타딥(InstaDeep)을 총 5억6200만 파운드(약 8500억 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AI와 머신 러닝을 활용해 차세대 면역치료제, 백신의 발굴·설계·개발을 위한 통합 전사적 역량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신약 후보물질의 고속 대량 설계와 검사를 가능케 한다는 목표다. 

노바티스와 아스트라 제네카는 외부 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여 개의 내부 연구 프로젝트와 7~8개의 협력을 진행했다. 머크앤컴퍼니·사노피·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도 지난해 AI 활용을 위해 관련 기업과 계약을 맺었다. 머크앤컴퍼니는 약물‧표적 발굴 전문기업 애브사이 코퍼레이션사와 연구 제휴 계약을 했다. 

사노피는 엑스사이언티아와 인공지능 기반 정밀의학 치료제 개발 공동 진행을 위한 전략적 제휴에 합의했다. 인실리코 메디슨과는전략적 연구 계약을 체결하고, 인실리코 측이 보유한 인공지능 플랫폼을 이용해 새로운 표적을 대상으로 하는 최대 6개의 신약개발 후보물질을 도출하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베네볼런트와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제휴를 확대했고, 화이자는 이스라엘의 컴퓨터 질환 모델 개발 전문 기업 사이토리즌 사와 2019년 맺은 제휴 계약을 연장했다. 

/표=김은실 디자이너

유럽에선 관련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2019년부터 2022년에 걸쳐 진행한 멜로디(MELLODDY) 프로젝트다. 연구비밀 노출 없이 데이터를 공유 및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시작했다. 블록 체인기술과 다중작업(multitasking) 예측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신약후보물질 발굴에 효과적인 화합물 식별 및 개인정보,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멜로디 프로젝트에는 암젠·바이엘·GSK·얀센·노바티스 등 세계 10대 제약회사와 KU루벤대학교·부다페스트 기술경제대학 그리고 AI 컴퓨팅 회사인 엔비디아(NVIDIA)등이 참여했다. 

한국 정부도 AI 활용 신약 개발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AI 활용 혁신 신약 발굴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공공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산학연 대상 서비스 활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임상시험계획(IND) 신청 가능 수준의 신약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구체적 성과를 도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