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연중 최저에 천연가스 급락’···에너지 시장, 내년 추세는?
WTI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배럴당 71달러 수준으로 내려와 천연가스 지난 8월 대비 큰 폭 하락···유럽 천연가스는 59% 내려 내년 가격 전망 기관 별로 달라···‘경기 침체’ vs ‘수요 견조’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원유와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 가격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어 주목된다. 가격 상승세가 거셌던 올해 상반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원유와 천연가스 모두 연중 최고치 대비 40% 넘게 떨어진 상태다. 경기 침체 우려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평가되면서 내년 에너지 가격 향방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고공행진 했던 원유와 천연가스, 최근 들어 급락
8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55센트(0.76%) 하락한 배럴당 71.4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21년 12월 21일 이후 최저치다. 이날 하락으로 국제 유가는 최근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 기간 하락폭만 12.02%에 이른다.
국제유가는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고공행진을 했다. WTI의 경우 올해 3월 배럴당 123.7달러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68.61달러 대비 80% 상승한 수치다. WTI의 이 같은 가격은 10년래 최고 수준이었다. 코로나19 리오프닝(경기재개)에 따른 수요 확대 기대감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 이슈가 합쳐지며 나타난 결과였다.
천연가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천연가스는 러시아발 공급 이슈 문제로 지난 8월까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지난해 말 메가와트시(MWh)당 100유로 수준이었지만 지난 8월 339달러까지 뛰었다. 이 영향에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미국 천연가스도 지난해 말 MMBtu(열량 단위)당 3.56달러에서 지난 8월 26일 9.68달러까지 급등했다.
그러다 최근 다시금 가격 수준이 내려왔다. 유럽 천연가스는 MWh당 138.89유로로 내려왔고 미국 천연가스도 5.96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 8월 최고치와 비교하면 각각 59%, 38% 하락한 수치다. 당초 천연가스 수요가 높아지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과는 반대된 모습이 나온 것이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하락 배경에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경기 침체와 연결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월가의 거물들이 내년 경기 침체를 경고하면서 투자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앞으로 다소 험난한 시기가 될 것이라 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도 CNBC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걱정하는 강한 경기침체가 나올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천연가스의 경우 계절과 재고 이슈가 더해지며 하락폭을 더욱 키웠다. 미국과 유럽 날씨가 과거 대비 온화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각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재고분 비축 및 에너지 소비 절감 노력이 더해지면서 가격 하락을 자극했다. 실제 유럽의 천연가스 업계 이익단체인 가스인프라스트럭처유럽(GIE)에 따르면 유럽의 가스 저장량은 95%까지 올랐다가 최근 추워진 날씨 영향으로 93%까지 하락했다.
◇ 내년 가격 전망은?···기관별 전망 달라 눈길
내년 초 에너지 가격 전망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10명을 대상으로 반기별 주요 에너지·원자재 기말 가격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원유는 전체 산업활동의 필수재로 수요 충격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2023년 상·하반기 가격 추이는 대체로 우상향할 것으로 예측됐다. WTI의 배럴당 가격은 내년 상반기 82달러, 하반기 84달러로 전망했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더욱 내림세를 보일 수 있다는 의견들도 존재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 선물중개회사 RJO선물의 선임 시장전략가 엘리 테스파예는 “시장 심리는 부정적인데 이대로라면 WTI가 배럴당 60달러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도 있다”고 밝혔고 스탠다드차타드의 에릭 로버트슨 수석 전략가는 “미국 경제가 내년 상반기에 깊은 침체에 빠질 경우 연준이 기준금리를 2%포인트 깜짝 인하할 수 있으며 브렌트유는 배럴당 40달러대로 폭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천연가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경련 조사에서 국내 리서치 센터장들은 천연가스 가격이 내년 경기 침체를 반영해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뉴욕상업거래소 거래 천연가스 MMBtu당 가격은 내년 상반기 6.3달러, 하반기에는 6.5달러였다. 이는 현재 천연가스 가격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해당 조사가 이뤄진 과거 시점과 비교하면 소폭 하락한 수준이다.
반대로 상승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수출과 운송 능력이 한계에 봉착해 유럽 수출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중국의 리오프닝이 본격화하면 수요 확대에 따라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요국이다. 미국과 유럽 날씨가 다시금 추워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부분도 천연가스 가격 상승 요인이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내년 대외 환경을 둘러싼 변수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황이어서 에너지 가격의 방향성 잡기가 어려워 보인다”며 “이에 따라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만큼 관련 상품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들은 더욱 신중하게 의사를 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