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불법파견’ 판결 이유 보니

법원, 파견법 위반 923명 직접 고용 판결···소 제기 7년만에 결론 사실상 현대제철이 직접 작업지시···협력업체 독자성도 불인정 금속노조 “도급계약은 파견사용자 책임·의무 회피 수단”

2022-12-05     주재한 기자
지난 2018년 7월25일 오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고로3공장에서 근로자 김아무개씨가 작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지난 1일 인천지방법원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라며 원청(현대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1년 소송이 제기된 지 7년만에 내려진 1심 판결이다.

재판부는 현대제철과 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용역도급계약은 형식적으로는 도급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비·조업·크레인·운송 등 모든 업무 공정이 현대제철의 전자 시스템이 등을 통해 작업지시가 이뤄진 점, 공정별 현대제철 소속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업무를 수행한 점, 협력업체의 독자성이 찾기 어려운 점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민사11부(재판장 정창근 부장판사)는 지난 1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925명이 현대제철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정년을 도과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923명에 대해 현대제철의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거나 현대제철이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대제철이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를 지휘하고 명령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제철 소속 근로자들은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을 구축해 작업물량, 작업위치 등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해야 할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줬다. 또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등 MES를 통해 업무를 지시하고 업무수행 상태를 관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MES는 단순히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결과에 대한 검수를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하는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을 지시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측면이 강화된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MES외에도 무전기, 유선전화, 카카오톡 등 메신저, 작업지시서를 통한 업무지시도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현대제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도 봤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담당한 업무·공정들은 원자재 입고부터 완제품 출하까지 현대제철이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주요 공정의 생산라인 진행과 연동돼있고,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일의 결과만을 완성하도록 업무를 수행할 재량이 없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아울러 현대제철 소속 근로자들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동일한 작업을 같이 수행하거나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도 한 점,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제철 근로자들의 ID를 이용해 전산시스템에 로그인해 업무를 처리한 점 역시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협력업체가 현대제철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으로 원고들의 인사 및 근태 상황을 결정하지도 못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체계, 임금수준, 근로조건, 근태상황, 휴직자 및 산재자 등을 비공식적으로 점검했다. 또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단체교섭 상황 등도 파악하는 등 “협력업체의 인사·노무관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 대부분이 설립 및 폐업과정에 현대제철과의 용역도급계약을 위해 설립됐다가 계약 해지 이후 곧바로 폐업한 사실도 확인됐다. 협력업체가 변경될 경우 새로운 업체가 기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대부분 고용승계하고 기존 협력업체가 용역 수행을 위해 구비한 유형 자산을 인수부분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협력업체가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정을 종합하면, 현대제철과 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용역도급계약은 그 실질에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고 그에 따라 원고들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현대제철의 작업 현장에 파견돼 현대제철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고들은 입사일로부터 2년을 초과해 당진제철소에 계속 근무한 사실이 인정돼 근로자 지위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고, 피고는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파견법은 2년 넘게 계속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원장은 “일관공정 방식의 제철소에서 상시적으로 일하는 각 공정의 수많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원청의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법률적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재확인 한 것이다”며 “협력업체와의 도급계약이 파견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이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