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돈은 줄이기도 어렵다”···원유 인상, 고물가 진정 더 늦춰지나

원유값 인상, 우윳값 3000원 돌파 가능성···업계, 빠르면 이달말 인상폭·수준 결정 계속되는 유제품 인상에 소비자 부담 호소···우유 특성 상 물가 미칠 파장 클 듯

2022-11-04     최성근 기자
4일 서울 성동구의 이마트 왕십리점 내 유제품 코너. 한 손님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우유 원유값이 인상되면서 고물가로 고통받는 국민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우유나 유제품 가격의 큰 폭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현장에선 인상분은 결국 소비자가격에 대부분 녹아들 것이란 반응이다. 우유로 만드는 제품들이 광범위하다보니 이번 원유값 인상이 최근 상승폭을 키우는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단 관측도 제기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원유가격을 리터당 947원에서 999원으로 52원 올리고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원유가격 인상으로 우유 등 유제품 가격도 함께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업계는 올해 우윳값은 인상하지 않았지만 다른 유제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려 왔다. 

정부는 일단 원유값을 인상하더라도 유업계가 제품 가격을 급격하게 올리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원유값 인상은 발표 전 이미 사전에 업체들에게 통지가 된 부분”이라며 “이번에 원유가격 인상으로 업체들이 우유나 유제품 가격을 급격하게 올리진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차원에서도 과도한 인상에 대해서는 자제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사뭇 다르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가격 인상을 전제로 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빠르면 이달 중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 한 메이저 유업계 관계자는 “품목이나 인상 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번 원유값 인상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 여부는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원유값 인상이 지난달 16일 이후 구입 제품에 소급된다는 부분에 더해 부자재 가격, 물류비 등 비용이 큰 부분이 있어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다른 주요 유업계 관계자는 “이번 원유 인상폭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제품 제조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도 환율 상승으로 급등했고, 인건비, 물류비, 제반 생산비용 또한 늘어 흰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가격인상은 검토를 진행중에 있다”며 “원유 가격이 소급적용돼 이미 인상된 원유를 받는 상황이라 인상시기를 너무 늦출 순 없고 빠르면 이달말이나 다음달 초 정도 검토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건 가격 인상이 능사가 아니다. 판매량이 유지돼야 영업이익이 보존되기에 소비자 부담도 최소화하면서 가격인상 반영분야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원유값 인상이 아이스크림과 빵, 케이크 등 우유를 사용하는 제품 가격까지 전방위적으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 입장에선 유제품이 먹거리란 점에서 체감되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날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주요기업 우유는 2600~2700원 선에 판매되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보통 우유 소비자 가격이 원유값 인상분의 10배 정도 적용된다고 본다. 원유값 인상분이 100% 소비자가에 반영되면 3000원대 초반에 우윳값이 형성될 수 있단 얘기다.

유제품 매장을 둘러보던 50대 주부는 “요즘에 음식 물가가 많이 올라서 부담이 많이 된다”며 “애들이 우유랑 치즈를 좋아해서 자주 사는데 먹는 건 오른다고 줄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손님은 “예전에는 저렴해 편하게 마셨는데 자꾸 오르니 우유도 맘대로 못 먹겠다”며 “음식값은 왠만하면 올리는 걸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매장 관계자는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가격들이 계속 오르고 있다. 이달에도 조금씩 다 올랐다”며 “원유가격이 올랐다고 여기 바로 반영되지는 않지만 좀 있으면 결국 가격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값 인상으로 연말 물가가 더욱 흔들릴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를 기록하며 3개월 만에 상승폭이 확대 전환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당초 9~10월 이후 꺾일 것이란 정부 관측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 총괄은 “현재와 동일한 상황이 유지된다면 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품목은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근원 물가쪽은 단기간 내려오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리 인상이 수요를 떨어뜨리면서 (물가가) 내려와야 하는데 지금은 이보다 기대인플레이션이 긴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어 근원 물가가 확 떨어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