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은행, 내년 3조원대 자본증권 콜옵션 만기 도래···흥국생명發 파장은

시장 신뢰 훼손 우려···자본시장 경색 불안감 증폭 금융지주·은행 내년 자본증권 콜옵션 4조원 육박 업계, 관련 파장 예의주시···리스크 전이 가능성 제기 유사 사례 속출 시 자금경색 가속화 전망, 유동성 크지 않아 위험성 크지 않다는 관측도

2022-11-04     김태영 기자
금융사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규모(2023년 기준)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레고랜드 사태 이후 흥국생명이 4억달러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아니지만 조기상환을 염두하고 투자자들이 투자를 해온 만큼 시장의 신뢰에 적잖은 훼손이 우려된다. 금리인상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자본시장 경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4조원에 육박하는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내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에 리스크가 전이될 위험성에 대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우리은행, DGB대구은행, IBK기업은행 등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은 내년 기준으로 신종자본증권 3조2799억원의 콜옵션 행사일이 도래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한금융지주는 5350억원 ▲하나금융 4880억원 ▲우리은행 4000억원 ▲DGB대구은행 3000억원 ▲IBK기업은행 2800억원 등이다. 글로벌 채권의 경우 신한금융의 5억달러(약 7100억원)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일이 오는 8월에 도래한다.

당장만 해도 내년 1월 30일 대구은행이 발행한 1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일이 도래한다. 이후 2월 BNK금융지주와 DGB금융지주, 3월 하나금융지주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가 가능해진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30년 이상으로 매우 길어 영구채라고도 불린다. 통상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 증권으로 BIS(자기자본비율) 계산 시 기본자본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금융사의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후순위채권으로 금리가 높은 편이며 콜옵션이 가능하다.

콜옵션이 포함된 신종자본증권은 상환 의무는 없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 5년물로 취급된다. 통상 5년 경과 후 발행사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데 콜옵션 행사기일을 만기로 여긴다. 하지만 최근 흥국생명은 오는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깨졌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조기상환에 실패한 것은 지난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처음이다. 평판이 중요한 금융사에서 이례적으로 콜옵션을 하지 않자 그 여파가 전 금융사로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전체로 보면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국내 금융사가 발행하는 영구채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2009년 당시에도 우리은행 콜옵션 실패 파장이 한국의 외환 사정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고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대거 이탈이 발생했다. 이에 우리은행은 후순위채를 스텝업 금리보다 높은 일반 채권으로 바꿔주면서 시장을 달랜 바 있다.

앞서 지난 3일 흥국생명은 "내년 5월 도래하는 신종 자본증권 이자 지급 기준일에 맞춰 콜옵션 행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그때 가봐야 알 것"이라며 불안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국내 금융사의 영구채에 대해 5년물로 인식했지만 앞으로 30년물로 인식해 영구채 발행 조건이 이에 맞춰 바뀔 것"이라며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서 웬만한 금리로도 발행이 쉽지 않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경색이 악화되고 자금조달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지주와 은행의 내년 콜옵션에 관련 리스크가 전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에 이어 유사 사례가 속출한다면 국내외 자금시장 경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지주와 은행은 유동성에서 문제가 없는 만큼 리스크가 전이될 위험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전망된다. 설령 콜옵션 미행사를 한다고 해도 당국과 충분한 합의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무엇보다 은행 입장에서는 콜옵션 행사를 못하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든 하려고 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금융시장에 큰 리스크가 오지 않는다면 은행권이 국내외에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에 리스크가 전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며 "최근 레고랜드 사태에 이어 유사 사례가 속출했으나 금융지주와 은행에 리스크가 전이될 위험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