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정리해고 푸르밀, 직원들은 ‘상실감’ 빠졌다

푸르밀, 이메일 통해 전 직원 사업종료·정리해고 통보 직원들 “하루아침에 실직”···위로금·공장 처분 계획 등 밝히지 않아

2022-10-19     한다원 기자
18일 오후 영등포구 문래동 푸르밀 본사 앞. / 사진=한다원 기자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45년 동안 사업을 이어오던 범 롯데가 ‘푸르밀’이 돌연 사업을 종료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면서 경영 실패가 낳은 결과다. 푸르밀의 사업 종료 결정에 임직원 400여명은 하루 아침에 실직 위기에 처했다.

19일 푸르밀은 400명이 넘는 전 직원에게 사업종료과 정리해고를 통지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정리해고 대상은 본사 일반직 350여명을 포함해 전주·대구 등 공장 생산직 사원 전부다. 사측은 정리해고로 인한 위로금이나 향후 부동산, 공장 처분 계획 등은 밝히지 않았다.

푸르밀은 이메일을 통해 “회사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1978년 4월 롯데그룹 산하 롯데유업으로 출발한 푸르밀은 2007년 4월 분사한 뒤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분사 당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지분 100%를 인수했고, 지난해부터는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단독으로 회사를 경영해왔다. 푸르밀 대표제품으로는 가나초코 우유, 검은콩이 들어있는 우유 등이 있다.

푸르밀 실적 추이. / 자료=푸르밀, 표=김은실 디자이너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푸르밀 자본총계는 143억원에 불과하다. 완전 자본잠식을 앞둔 수준이다. 특히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동환씨가 2018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실적 내리막길을 걸으며 적자폭을 키웠다.

푸르밀은 오는 11월30일을 기점으로 사업 종료와 전 직원 정리해고를 결정했다. 이로써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게 된 푸르밀 직원들은 상실감에 빠진 상태다.

전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푸르밀 본사 주변에서 기자가 만난 푸르밀 직원들은 충격에 빠진 분위기였다. 취재에 응한 일부 직원들은 “갑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 푸르밀 직원은 기자의 질문을 회피했다.

푸르밀 직원 A씨는 “하루아침에 실직 위기에 놓여 당황스럽다”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직원들끼리 말을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B씨는 “또 다시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면서 “회사 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해고 통보 전에 직원들에게 어느정도 언급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거 같은데 하루 아침에 실직하게 돼 심저긍로 힘들다”며 “매각도 아니고 사업종료는 너무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푸르밀 본사 앞. / 사진=한다원 기자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푸르밀 가나초코우유. / 사진=한다원 기자

실제 LG생활건강은 푸르밀 인수를 타진했지만 사업상 시너지가 없다는 판단에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LG생활건강은 탄산음료(코카콜라)·주스(미닛메이드)·커피(조지아)·음료(파워에이드) 외에 유제품을 강화하기 위해 푸르밀의 인수를 검토한 바 있다.

푸르밀 노동조합은 신동환 대표이사를 비롯한 신씨 오너 일가를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푸르밀 노조는 성명서에서 “신준호·동환 부자의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이 든다”며 “강력한 투쟁과 생사기로에 선 비장한 마음을 표출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모든 적자 원인이 오너 경영 무능함에서 비롯됐지만 전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한 어떤 제시나 제안도 듣지 않고 노사 간 대화창도 닫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대의 변화되는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른 사업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 등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으나 안일한 주먹구구식 영업을 해왔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푸르밀이 사업은 종료해도 법인은 유지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푸르밀이 법인 청산이 아닌 법인 존속을 유지하면서 최대주주인 신준호 전 회장 일가가 수백억원대의 법인세 면제 혜택을 위해 이번에 사업을 종료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통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직원수도 많고 투자 부진과 안일한 경영으로 매각한 느낌이라 보상안이라도 먼저 마련하거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