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악몽 재현될라’···건설업계 미청구공사 촉각
10대 건설사 지난해 말 대비 21.2% 증가 한신공영 등 중견사들도 오름세 두드러져 국내외 불확실성 커져 ···재무구조 악화 뇌관 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건설사들이 미청구공사 규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어서다. 미청구공사는 당장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재무구조 악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데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불안해지면서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의 올해 상반기 미청구공사액 합계(개별 기준)는 12조6515억원이다. 6개월 전인 지난해 말 10조4338억원 대비 21.2% 증가했다. 미청구공사액 증가세가 두드러진 건설사는 현대건설이다. 올 상반기 2조4309억원으로 6개월 사이 40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포스코건설과 SK에코플랜트도 3000억원 이상 늘었다.
중견 건설사들도 미청구공사액이 오름세다. 한신공영과 남광토건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한신공영은 미청구 공사액이 작년 말 629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003억원으로 6개월 새 2배 가까이 불었다. 올해 누적 영업이익(210억원)을 훨씬 웃도는 상승폭이다. 같은 기준 남광토건의 미청구 공사액(700억원→1158억원)도 약 1.7배 늘었다.
미청구공사란 건설사가 공사를 하고도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금액을 말한다. 공정 기간이 오래 걸리는 건설업 특성상 통상 건설사들은 공사진행률을 감안해 미리 수익으로 잡아놓는다. 인식한 수익만큼 공사대금을 받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동안 잡힌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바뀌게 된다. 매출채권(공사대금)에 비해 회수가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금액이 급증할 경우 유동성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미청구공사 증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연기 또는 취소됐던 해외 사업의 재개와 금리인상으로 인한 국내 주택사업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대외 변수로 촉발된 인플레이션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대금이 유입되지 않은 탓에 공기가 지연되고 그동안 건자재값이 치솟으면서 미청구공사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미청구공사액은 해외사업 등이 재개됨에 따라 늘어남에 따라 자연히 상승하는 경향도 있지만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상황에 따라 부실 잠재 우려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데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청구공사액은 금유위기 후유증 등으로 건설업황이 악화됐던 2015~2016년 건설사 성장의 발목을 잡은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많은 건설사들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유동성이 악화됐다. 이후 건설사들은 꾸준한 관리 등을 통해 미청구공사 감축에 노력했다. 2018년부터 미청구공사액이 내림세로 돌아섰지만, 최근 들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아직 위기를 느낄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미청구공사로 인한 위기는 중동 저가수주로 인해 촉발된 측면이 크다”며 “기자재 조달 등 정상적인 공사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어 미청구공사가 무조건 부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금융위기만큼이나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에 국내외 도급공사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