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업황 악화에도 ‘투자 시계’ 빨라진 이유

서버 비중 확대로 메모리 사이클 과거보다 2년여 빨라져 경기 변동에 영향 받지 않고 투자 필요성 높아져

2022-09-20     이호길 기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로 반도체 업황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지만,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은 중장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응용처가 PC와 모바일에서 서버와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업황 변동 주기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사이클이 단축되면서 불황기에도 투자 강화 필요성이 높아졌단 분석이다.

2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력을 늘리기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평택캠퍼스 P3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한 데 이어 P4 공장 증설 속도도 높이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 완공이 예상되는 P4 라인 건설 기간은 P3 대비 10% 이상 빠르단 평가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신규 반도체 생산 공장인 M15X 착공 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겨 내달 공사에 돌입한다. 메모리 반도체 증산을 위한 선제 투자 차원으로 향후 5년간 공장 건설과 생산 설비 구축에 15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 반도체 제조사의 움직임도 빠르다. 마이크론은 150억달러(약 20조8000억원)를 투자해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D램 공장을 건설한다. 오는 2025년 가동에 돌입해 현재 10% 수준인 미국 내 D램 생산 비중을 40%로 높인단 계획이다. 인텔도 현지시각 기준 지난 9일 200억달러(약 27조7000억원)가 투입되는 오하이오주 신규 반도체 공장 기공식을 개최했다.

기업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하강 국면에 접어든 반도체 업황과 상반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IT 제품 수요 둔화로 완제품업체들의 재고가 증가하면서 3분기 소비자용 D램과 낸드 가격이 2분기 대비 각각 13~18%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고 조정 기간이 내년 초까지 이어지면서 가격 하락 폭이 커질 수 있단 관측도 제기된다.

또 기업들의 투자 강화는 과거 불황기 상황과도 상반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수요 부진이 본격화된 2019년 초에 대외환경 불확실성과 거시경제 변동성 등의 이유로 증설 투자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하이닉스 청주 M15 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른 응용처 변화로 메모리 업황 사이클이 기존 4년에서 2년 내외로 짧아지면서 기업들의 투자가 경기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단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상반기 기준 D램 주요 수요처는 모바일(33.7%), 서버(27.5%), PC(20.3%) 순이었다. 지난해 서버(32%)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모바일(22.4%)과 PC(15.4%)는 각각 11.3%포인트, 4.9%포인트 줄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메모리 업황이 2024년부터 서서히 회복되고 2025년에는 반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하반기 업황 둔화 이후 2년여 만에 회복된단 전망이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의 경우 ‘올림픽 사이클’이라고 해서 4년 주기로 호황기가 찾아왔는데, 이제는 주기가 짧아졌다. 메타버스와 데이터 센터 등에서 높은 수준의 생산량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사이클 주기를 정확하게 숫자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주기 자체가 짧아진 건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 등의 요인으로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2024년 이후로는 경제가 나아질 수 있단 기대가 있고, 장기적으로 반도체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반도체 기반 시설을 갖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건물을 지어놓은 뒤 장비 반입은 업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