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경착륙에 LH 공동주택용지 매각 이행도 빨간불

시장 위축되는데 ‘사전청약 이행 조건부 매각’에 건설업계도 보수적 접근

2022-08-31     노경은 기자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주택시장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으면서 LH의 토지매각에 등돌리는 건설업체가 많아졌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동주택용지 매각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택시장이 경착륙과 함께 원자재값 상승으로 인해 건설업계가 사업 투자에 몸을 사리는 영향이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H는 약 일주일 전인 이달 25일까지 영종하늘도시 공동주택용지(A54) 매각을 위한 신청 접수를 받았다. 이 토지는 인천 중구 중산동 1913-4번지 일대 총 4만9870㎡ 규모이며 공급가격은 588억4000만원이다. 매수업체는 건폐율 50%, 용적률 80%, 최고층수 4층을 적용받아 총 265세대를 지을 수 있다.

LH는 1순위 조건자격을 적격성 평가지표 총 18점 만점에 5점 이상 획득한 업체로 제한했다가 이후 3점 이상 획득자로 완화하는 정정공고를 내기도 했다. 적격성 평가지표란 청약실적, 산업안전예방활동 실적 등을 배점으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하루 뒤인 9월 1일 계약체결을 할 예정이었지만 1순위에 이어 2순위까지 신청자가 전무해 매각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앞서 LH가 이달 5일 매각을 시도한 괴산미니복합타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LH는 충북 괴산시 괴산읍의 4만5000㎡ 규모의 공동주택용지 A3블록과 A4블록 동시 매각을 추진했다. 두 필지를 합하면 공급가격은 총 257억원에 전용면적 60㎡ 이하 아파트를 약 870가구 가량 지을 수 있다. LH는 두 필지를 동시에 매각하는 게 토지를 매수하려는 건설업체의 사업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 일정을 같이 잡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필지 역시 주인을 찾지 못했다. 주택시장이 호황일 땐 건설사들이 달려들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보이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인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공동주택용지가 잘 안 팔리는 이유로 사업성을 꼽는다. 하루 전인 30일에는 서울에서 2개월여 만에 나온 청약물량이 1순위 청약에서 조차 미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곳은 강남권과 직결된 7호선 역세권 입지임에도 분양가와 잇단 금리인상으로 예비청약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이처럼 공급물량이 품귀하다는 서울에서조차 미분양이 나는데, LH는 특히 앞선 영종과 괴산 토지에 대해 사전청약 이행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즉, 계약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사전당첨자 모집공고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되는데다, 원자재값은 급등하고 있어 건설업체들이 보수적 경영을 하려는 상황인데 매각 조건이 미분양이 급증하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까다롭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과 같이 서울도 미분양나는 상황에서 영종이나 읍면리로 파고드는 시골 땅을 수백억에 사서 6개월 이내에 사전청약하려는 건설업자가 몇이나 되겠나”고 반문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앞으로 줄줄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3월 LH는 한 해 동안 약 338만㎡에 달하는 공동주택용지 110필지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도 규모이면 주택 6만 가구를 지을 수 있는 땅인데, 지난해 공급면적(216만㎡, 59필지) 대비 1.8배 가량 많은 수준이다. 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위해 공동주택용지도 다량 공급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차원이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시장 분위기는 정 반대여서 건설업체도 관망하는 추세다.

다만 LH는 매각요건을 완화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토지매각은 주택경기를 워낙 심하게 탄다”면서 “사전청약 이행 요건은 국토부에서 주택공급 활성화 차원에서 이행을 요청한 것이고 조치는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재공급 공고에도 같은 조건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