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올려준다는데···건설업계 ‘기대 반 걱정 반’
정부, 21일 분양가 상한제 개편안 발표···“도심 주택 공급 촉진” 조합원 이주비 이자 등 가산비로···자재비 인상분도 반영 “원가 부담 개선 기대하지만···고분양가로 인한 분양 실패 우려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도심 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분양가 규제 개편에 나선 가운데 건설업계에선 기대와 걱정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이번 개편으로 자재 인상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원가 부담이 크게 개선되겠지만 최근 청약시장이 침체된 만큼 분양가를 급격히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높은 분양가로 인해 자칫 흥행이 저조할 경우 브랜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일(21일) 분양가 상한제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개편안은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고분양가 심사제도 산정방식을 바꿔 분양가격을 올리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 과도한 분양가 규제로 인해 서울의 주요 주택 공급 통로인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개편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국토부는 분양가 상한제 개편안으로 정비사업의 특수성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가산비 형태로 분양가에 반영해 주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하에서 분양가는 ‘택지비+건축비+택지비·건축비 가산비’를 통해 정해진다. 가산비 항목에 조합원 이주비, 조합 사업비 금융이자 영업보상, 명도소송 비용 등을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밖에 택지비 산정 방식, 조경·설계를 포함한 마감재 고급화 비용 처리 등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원자재 값 급등에 따른 건축비 인상도 검토 중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3월 1일자로 공동주택 기본형 건축비를 작년 9월 대비 2.64% 올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철근 가격은 지난해 초 1톤당 71만1000원에서 지난달 119만원으로 약 66% 상승했다. 레미콘 단가도 1㎥당 7만1000원에서 8만300원으로 약 13% 올랐고, 원재료인 시멘트 가격도 15% 이상 상승했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현재 시세에 맞게 빠르게 반영하는 방안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축비 산정 주기는 정기 6개월, 비정기 3개월(정기고시 이후 철근∙레미콘∙PHC 파일∙동관 등 4개 자재의 가격이 3개월 만에 15% 이상 오를 경우)로 간격이 길다 보니 적시에 조정되기 어렵다는 불만이 있었다. 아울러 HUG의 고분양가 심사 제도도 일부 개선된다. 고분양가 심사 제도는 현재 주변 비교 단지 시세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결정하는데, 앞으론 비교 단지 대상 범위를 현재보다 넓혀 주변 시세를 더 많이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다.
개편이 이뤄진 이후 분양가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에선 정비사업장의 경우 현행 분양가 기준 강남 10%, 강북 15∼20% 가량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공사 중단 사태를 맞은 둔촌주공의 경우 현행 분양가 상한제로는 3.3㎡당 3500만원 내외의 분양가가 예상되지만, 분양가 상한제 미적용 후 일반분양 시 3.3㎡당 4000만~4500만원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분양가를 높이면 수익성이 개선되는 만큼 막혀있던 재건축·재개발 사업들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사업계에선 건축비에 자잿값 인상분이 반영되면 원가 부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원자잿값 인상분만큼 분양가를 급격히 올리기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올해 들어 ‘청약 불패’ 지역으로 여겨졌던 서울에선 대형 건설사의 분양 단지임에도 미계약 물량이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 분양가 상한제가 미적용돼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단지다. 강북구 미아동에서 4월 공급된 ‘한화포레나미아’는 청약 당첨자 42%가 계약을 포기했다. 앞서 1월 GS건설이 같은 지역에서 분양한 ‘북서울자이폴라리스’ 역시 청약 당첨자의 계약 포기가 이어졌다. 입지에 비해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면서 수요자들의 외면을 당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에선 집값 고점이란 인식이 확대되고 대출 규제 강화, 금리 인상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 수준의 청약 열기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정상 리얼투데이 과장은 “통상 주변 시세보다 20% 가량 저렴한 분양가에 나와야 흥행 가능성이 높은데 최근 공급된 단지들은 분양가가 높아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최근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발생하듯이 분양가가 비싸면 소비자가 외면해 버린다”며 “규제를 완화해도 건설사들이 분양가를 급격하게 올리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 분양가를 올려 청약에 나섰다가 흥행이 저조할 경우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고심에 빠진 모양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목도가 높은 서울 청약 시장에서 분양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순 도급이라고 해도 미분양이 나올 경우 온전히 건설사의 전략 실패로 비춰지는 만큼 분양가 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