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 지능화에 의무보고제도 필요성···“성실납세협력제와 연계 효과적”
역외거래 통한 조세회피 문제 부각···의무보고제도 필요성 증대 보고대상·의무자 쟁점···“역외거래 한정, 과태료 책정 성패 좌우”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역외거래를 통한 조세회피가 점점 교묘해지면서 사전적 신고제도인 의무보고제도를 도입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의무보고제도를 시행할 때 보고 대상과 보고 의무자 부분이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 가운데 성실납세 협력제도와 연계가 필요하단 조언이 제기된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 체제가 구축되고 정보기술 산업이 발달하면서 복잡한 형태의 국제거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로인해 전세계적으로 세법상 허점을 이용한 조세회피가 고도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역외거래 등을 통한 조세회피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사주일가가 미신고 해외금융계좌를 통해 우회 수취한 거래처 알선수수료를 신고 누락하거나 해외금융계좌를 통해 배우자로부터 증여받은 해외부동산 취득자금에 대한 증여세 신고를 누락하는 등의 사례가 국세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과세당국은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 거래에 대한 자료제출 의무,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 미신고 역외소득 및 재산 자진시고제도, 탈세에 대한 제보자 포상금 지급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은 사후 신고제도로 고도화, 지능화하는 조세회피거래에 제대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단 지적이 나온다. 이에 조세회피거래에 관여한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 세무조력자에게 신고 의무를 사전에 부여하는 의무보고제도를 시행해야 한단 주장이 제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격적 조세전략에 대한 의무보고제도를 아직 도입하지 않은 국가에 도입을 권고하고 있으며 우리 과세 당국도 의무보고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의무보고제도 관련해서는 지금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내기도 했다”며 “조세회피 행위를 억제하는 건 숙원사업이기에 조력자에 대한 의무보고제도나 해외 신탁 보고제도 관련해선 꾸준히 개정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세무사회 주최로 열린 세무포럼에서는 의무보고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가장 큰 쟁점은 보고 의무자와 보고 대상이란 분석이다.
보고 의무자 관련 주요 국가 사례를 보면 미국과 캐나다는 기획자와 납세자 모두에게 보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영국은 기획자나 납세자 중 한쪽에만 보고토록 하고 있다.
구성권 명지전문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보고의무의 효율성을 감안해 기획자에게 보고의무가 있다고 보는게 일반적이지만 이 경우 비밀유지 특권에 대한 논쟁, 기획자의 보수가 보고의무 금액보다 낮으면 보고대상에서 제외되는 등의 문제점에 더해 납세자가 보고의무를 부담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광범위하게 인정된다”며 “상황에 따라 보고 의무자를 달리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뢰한 자를 의무자로 보는 방안이 있단 설명이다. 공격적 조세전략에 있어 납세자가 기획하거나 납세자가 기획자에게 의뢰한 경우에는 납세자를, 기획자가 납세자에게 제안한 경우에는 기획자를, 의뢰자나 제안자가 모호한 경우에는 납세자와 기획자 모두를 보고 의무자로 하는 것이다.
보고 대상 범위에 있어 특정거래가 선별지표에 부합하면 바로 보고의무가 발생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이 경우 세금혜택이 거래의 주요 혜택이거나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한 것이란 걸 밝힐 필요가 없다. 하지만 보고의 양을 증가시켜 납세자와 과세 관청 모두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제공 받은 정보의 관련성이 낮아질 수 있단 문제가 있단 분석이다.
세금 혜택이 의도된 주요 목적이면 보고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도 있다. 이 방안을 사용하면 조세 전략 요소를 따로 정의하거나 식별할 필요 없이 거래의 특정 범주를 선별지표로 할 수 있다. 다만, 역외 조세전략의 경우 전제조건의 적용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구 교수는 “비밀유지 거래와 프리미엄 수수료 거래, 표준화된 조세전략 상품 등 OECD와 해외 주요국가 사례, 우리나라에서 개별 고시한 거래나 조세 전략도 보고대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세 전략이 선별지표를 충족하더라도 해당 조세전략이 특정 금액 이상의 세제 혜택을 위한 것이 아니면 보고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근거로 의무보고제도를 도입했을 때 헌법상 주요 원칙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단 지적도 나온다. 김무열 부산시의회 연구위원은 “의무보고제도 입법 이후에도 헌법상 명확성 원칙, 세무사와 변호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단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조세회피전략을 사전 예방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건 국가 역할인데 이를 기획자나 납세자에게 전가시키면서 인센티브는 없이 이행하지 않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부당하단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무보고제도 관련 불확정 개념이 실무자들에게 상당한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단 지적이다.
현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성실납세 협력제도와 의무보고제도를 연계가 필요하단 조언이다. 구 교수는 “성실납세 협력제도는 단순히 과세관청에 보고하는 차원을 넘어 과세관청과 협의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납세 의무를 신속하게 확정할 수 있다”며 “성실납세 협력제도의 대상을 대기업으로 확대하고 해당 협약을 체결하면 의무보고제도에서 제외하는 등 의무보고제도를 성실납세 협력제도와 연계하면 의무보고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단점을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김신언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는 “성실납세자에 대해서는 신고(보고)의무 면제가 필요하고 신고대상 거래는 역외거래에 한정해야 한다”며 “납득할 수준의 과태료 책정이 도입초기 제도 정착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