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서울 전세’···8월 임대차법發 대란 오나

전셋값 상승 가팔라, 수급 불안 여파 임대차 시장서 월세 비중 전세 앞질러 하반기 신규 입주 물량 줄어, 상반기比 37%↓ 8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매물 쏟아질 듯 “갱신 시점 분산, 전세대란 없을 수도”

2022-05-25     길해성 기자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전세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매물 부족으로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서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데다 전세 공급 통로인 신규 입주 물량도 크게 줄어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올 8월 임대차보호법 시행 2년을 맞아 계약갱신청구권이 소진된 물건이 현 시세에 맞춰 대거 시장에 풀리면 전세시장이 한차례 더 출렁일 것이란 우려가 크다. 다만 계약갱신 시점이 분산돼 있는 만큼 전세대란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급 가뭄에 전셋값 상승세

25일 KB부동산 주간주택시장동향을 살펴보면 5월 셋째 주(1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가격은 0.0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영등포구(0.19%), 서초구(0.16%), 성동구(0.15%) 등이 상승세를 견인했다. 전셋값 상승률은 3월 첫째 주부터 4월 첫째 주까지만 해도 매주 0.01~0.02% 수준이었지만 4월 둘째 주 0.03%를 기록한 이후 상승폭이 커져 5월 둘째 주 0.07%까지 급등했다.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수급 동향을 나타내는 전세수급지수는 지난주(16일 기준) 132.7을 기록했다. 지수(0~200 범위 내)가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을 의미한다. 올해 1월 120.4까지 떨어졌지만 2월부터 상승 전환한 후 4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지수 역시 2월 28일 기준 89.5에서 꾸준히 올라 지난주 94.8을 기록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전세의 월세화 현상도 공급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직방이 서울의 확정일자 통계(등기정보광장 발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확정 일자를 받은 전월세 중 51.6%가 월세로 집계됐다. 임대물건 2채 중 1채 이상이 순수 월세 또는 월세를 일부 낀 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 비중이 전세를 넘어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2019년 전세 대 월세 비율은 59% 대 41%로 전세가 다소 많았으나 월세 비율이 2020년 41.7%, 2021년 46%까지 점차 증가했다.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수급 불안···다시 계약하려면 2억원 더 구해야 

임대시장이 불안해진 요인으론 문재인 정부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 7월 31일 도입한 ‘계약갱신청구권’(전세 기간 2년+2년 보장)과 ‘전월세상한제’(임대료 최대 5% 인상)가 꼽힌다. 전월세상한제로 전세가를 올릴 수 없게 된 집주인이 월세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많아졌고 기존 계약 기간에서 2년을 더 연장해 주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는 세입자가 늘어나면서 전세시장의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전세가격은 가파르게 올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제도 시행 전인 2020년 6월 4억9148만원에서 지난달 6억7569만원까지 상승했다. 2년 새 37%(1억8421만원) 급등한 것이다.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전 2년간(2018년 8월~2020년 7월) 서울 전셋값 상승률이 9.5%(4339만원)에 그쳤던 점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훨씬 가파르다고 볼 수 있다.

◇8월 계약갱신 만료, 4년치 금액 반영될 수도···“계약 만료 시점 분산, 전세대란까지 오지 않을 것”

올해 8월 계약갱신청구권 만기가 다가오면서 임차인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지난 2년간 전세 보증금을 시세만큼 올려 받지 못한 집주인들이 현재 시세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까지 고려해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리가 오르고 있는 데다 대출 규제가 여전해 오른 전셋값을 충당하기에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에 따르면 8~12월 갱신계약이 만료돼 임대차 시장에 나오는 수요는 월평균 3000가구로 예상된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여기에 하반기 입주 예정 물량이 적다는 점도 전세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통상 신규 입주 물량은 수분양자들이 입주 전 부족한 자금을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하는 만큼 전세시장에서 수요를 분산하고 부족한 공급을 메꿔주는 완충 역할을 한다. 올해 하반기 서울의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8326가구다. 상반기(1만3826가구)보다 39.8% 감소한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입주물량이 늘어날수록 전세 공급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며 “하지만 물량이 감소하게 되면 새 집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는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셋값 급등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사례들이 8월에만 집중된 게 아니라 여러 시점으로 분산돼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여름에 집중적으로 전세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2년의 효력이 만료된 임대주택과 신규 체결되는 계약건들이 혼재하는 2중 가격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