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기차 생산 반대하는 현대차 노조, 국내 투자계획에도 ‘시큰둥’···왜?

현대차그룹, 국내 전기차 144만대 생산 계획 발표···노조 “이미 공개된 내용들 뿐, 알맹이 없다” 임단협서 정년 연장·임금 인상 통과시키기 위한 교섭 카드 포석 풀이 국내 고용 안정 위해서도 해외 판매 확대 이뤄져야···현대차, 판매 80% 이상 해외 2030년에도 전기차 비중 36% 불과···정년 퇴직 등 자연 감소분으로 구조조정 없을 듯

2022-05-18     박성수 기자
/ 사진=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미국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일각에선 노조가 미국 전기차 생산에 반대하는 다른 속내가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하 임단협)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 전기차 공장 건설을 빌미로 정년 연장 및 임금 인상 등 노조가 추진해온 다른 요구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분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전날 소식지를 통해 “사측의 일방적 미국 공장 설립 추진에 강력 대응할 것”이라며 “언론 보도를 보면 사측이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에 전기차 공장 건설을 발표할 예정인데, 노조에 단 한마디도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단협은 해외 공장 신·증설시 조합에 설명회를 열고,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고용안정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는데, 미국 공장 설립은 단협 위반이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 공장 신설과 관련해선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날 현대차그룹이 국내 전기차 생산 계획을 발표했으나 노조는 심드렁한 반응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한국에서 전기차 분야에 총 21조원을 투자해 연간 생산량을 144만대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144만대는 2030년 현대차그룹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의 45%에 달하는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전기차 생산 목표를 323만대로 세웠다.

이에 대해 현대차 노조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며 “이번에 발표한 국내 전기차 생산 계획은 이미 사전에 공개된 것들이며 어디서 어떻게 생산할 것이냐는 중요한 알맹이는 다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노조가 미국 공장 반대를 통해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 및 임금 인상 합의를 이뤄내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에서 기본급 월 16만52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으며, 별도 요구안에 정년 연장, 신규인원 충원, 고용 안정 등을 포함했다.

기본급 인상안의 경우 지난해 요구안(월 9만9000원)보다 66.8% 올랐으며 실제 인상액(7만5000원)보다 2배 이상 높은 셈이다. 기본급 인상 폭이 가장 컸던 2015년(8만5000원)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높게 제시한 것이다. 노조는 회사가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된 만큼 성과를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노조는 정년 연장에 대해선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으며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 노조는 시니어 촉탁제(단기 계약직) 폐지를 통해 정년을 현재 만 60세에서 만 61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촉탁제는 정년 퇴직자중 희망자에 한해 회사가 신입사원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1년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현대차 노조 4만7000명 중 올해부터 2026년까지 정년 퇴직 예정자가 1만2600명으로 알려졌다. 현재 노조원 중 4분의 1이 5년 내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올해 새로 바뀐 노조 집행부가 정년 연장카드를 통해 지지 기반을 굳건히 하려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국내 고용 안정 위해선 해외 거점 판매 확대 필요

현대차가 국내 고용 안정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내수 중심이 아닌 해외 판매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 해외 수익이 곧 회사 실적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현대차 판매 대수는 총 389만726대로 이중 내수 판매는 72만6838대, 해외 판매는 316만3888대를 기록했다. 내수 비중은 18.7%였던데 비해 해외 비중은 81.3%에 달한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즉, 대부분 매출이 해외 판매에서 나오고 있으며 해외 시장 경쟁력이 곧 회사 실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국내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해외 판매 확대를 통한 회사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미국은 최근 현대차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해외 시장 중 하나다. 현대차는 1986년 미국에 진출한 이후 후발주자로 30년 가까이 중소형차를 판매하며 이름을 알려오다, 2010년 중반부터 싼타페, 투싼, 코나, 팰리세이드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수익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에는 제네시스 브랜드와 전기차 아이오닉5까지 내놓으며 미국서 선전하고 있다.

현대차가 최근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중국서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익 개선을 위해서는 미국 판매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 74억달러(약 9조4000억원)를 투자해 현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물론 국내에서 생산량을 늘려 미국 시장에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 국내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최선이겠으나, 외부 요인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현지 생산 차종에 대해 추가 보조금 혜택을 주는 등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펼치면서 현지 전기차 생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내 수출 차량으로는 현지 생산 제품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또한 수출에 필요한 해상 운송비 등 추가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국내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고임금 체제인 한국에선 제네시스와 같은 고수익 차량을 주로 생산해 수출하는 식으로 고용 안정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차 노조는 미국 공장 설립에 따라 국내 고용 안정이 흔들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이같은 노조 의견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현대차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차량은 총 164만6888대로 이 중 내수 판매는 72만6838대, 수출 판매는 92만50대를 기록했다. 즉, 국내에서 생산하는 물량 중 44%는 내수 시장서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수출의 경우 36만6080대로 나타났으며 국내 거점 판매량의 22.2% 수준이다.

현대차 중장기 전기차 판매 계획. / 자료=현대차

전기차 시대를 맞아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187만대를 목표로 했으나, 이는 전체 판매량의 36% 수준에 불과하다. 이 중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목표는 53만대로, 회사 현지 판매의 58% 수준이다. 2030년까지 8년이란 시간이 남은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구조조정 없이 정년 퇴직 등 자연 감소분을 통해 국내 고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업계 중론이다.

특히 현재 현대차 노조 절반이 50대 이상인 상황에서 향후 정년 퇴직 등으로 자연스레 인력 구조가 조정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최근 몇 년간 다른 전세계 완성차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섰을 때도 인력 조정을 진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