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 또 피했다···HDC현산, 서울서 4번째 시공권 방어
‘강북 재개발 최대어’ 이문3구역, 시공권 배제 안건 부결 잠실진주·상계1구역·미아4구역, 시공 지위 유지하기로 이달 22일 1조원 규모 부산 시공계약 해지 총회 촉각 시공 포기하고 지분만 참여하는 사업지도 등장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광주 사태 이후 전국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퇴출 위기를 겪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이 한숨 돌린 모양새다. 상징성이 큰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잇따라 시공권을 방어하면서다. 조합들이 시공사 교체로 인한 사업 지연과 추가 비용·법적 공방 등을 우려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서울 최초 HDC현산 시공계약 해지’라는 위기를 넘기며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할지 이목이 쏠린다.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HDC현산은 이문3구역 재개발 사업 시공권을 유지하게 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HDC현산의 시공권을 배제하는 안건이 부결되면서다. 총회 참석 조합원(전체 1371명) 1149명 중 714명(62%)으로부터 ‘시공사 유지’ 찬성표를 받았다.
이문3구역 재개발은 동대문구 이문동 일대 지상 41층, 25개 동, 4321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공사비만 1조원에 육박해 강북권 재개발 최대어로 꼽힌다. HDC현산은 2018년 GS건설과 컨소시엄을 맺고 사업에 참여했다. 지난해 8월에는 조합과 지분 52%에 해당하는 5095억원 규모 도급 계약을 맺었다.
이번 결정으로 광주 사건 이후 ‘서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최초 시공계약 해지’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조합은 광주 학동 붕괴사고로 HDC현산이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은 게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시공권 배제 안건을 총회에 올렸다.
HDC현산이 광주 사태 이후 서울에서 시공권 방어에 성공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달 24일 송파구 신천동 잠실진주 재건축(공사비 3282억원)에서 사업권을 지켜냈다. 조합이 이문3구역과 비슷한 이유로 계약 해지 안건을 상정했으나 최종 부결됐다. 앞서 14일에는 노원구 상계1구역 재개발(1388억원)과 강북구 미아4구역 재건축(1341억원)에서 시공계약을 정상적으로 체결했다.
이들 사업장이 HDC현산과 계약을 유지한 건 시공사 교체로 인한 부담이 적지 않아서다. 이문3구역의 경우 착공이 시작돼 현재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공사가 바뀔 경우 공사 지연 가능성이 컸다. 잠실진주 역시 사업 지연과 법적 공방으로 인한 추가 손실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계1구역과 미아4구역은 그동안 사업 진전이 더뎌 어려움을 겪던 곳들이다. 최근 조합·시공사 간 갈등으로 사상 초유의 공사중단 사태가 발생한 둔촌주공 사태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방에서도 시공권을 지켜냈다. 울산 남구 신정4동 재개발 조합은 지난달 30일 열린 조합원 총회를 통해 HDC현산의 시공사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조합원 70%가 시공사를 유지하는 안건에 찬성했다. HDC현산은 당초 지난해 8월 수의계약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광주 사태 이후 여론이 악화되면서 지위가 위태해졌다. 하지만 시공사 변경 시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시공사 재계약 등 소요 기간이 1년 가량 지연될 것이란 조합의 분석에 따라 기사회생하게 됐다. 신정4동 재개발은 지상 43층, 10개 동, 1391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공사비만 4081억원 규모다.
다만 HDC현산 입장에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달 중 부산 시민공원촉진3구역과 대전 숭어리샘 재건축에서 시공계약 해지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를 앞두고 있어서다. 시민공원촉진3구역의 경우 HDC현산이 단독으로 수주한 사업지다. 공사비만 1조원 규모로 해지가 결정되면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대전 숭어리샘 재건축은 GS건설과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사업지로 HDC현산이 확보한 공사비는 2279억원(지분 50% 반영)이다.
HDC현산은 앞서 시공계약을 해지한 단지가 상당한 만큼 총회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광주 사태 이후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곳은 부산 금정 서금사촉진A구역, 대전 도안 아이파크시티 2차 신축공사, 경기 광주 곤지암역세권 신축공사 등 7곳이다.
다른 건설사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일부 사업지에선 지분을 낮추는 대신 사업권만 유지하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운암주공3단지의 경우 시공사업단(GS건설·HDC현산·한화건설)에서 빠지는 대신 지분(10%) 투자에 따른 개발 이익만 가져가기로 했다. 현대건설과 함께 참여한 광명11구역에선 조합이 제시한 공동이행방식(HDC현산 시공 배제 및 아이파크 브랜드 미사용)을 수용했다. 시공에선 빠지되 지분 참여를 통해 이익을 공유할 예정이다. 수원 영통2구역(재개발)과 의왕 부곡다구역(재건축)에선 각각 GS건설과 대우건설에 지분을 양보해 조합원 반발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HDC현산 관계자는 “잠실진주에 이어 이문3구역까지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시공권을 유지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나머지 현장도 조합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시공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