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은행, 대손준비금 적립 합의했지만···'충당금 신경전' 계속될듯
금감원, 은행 충당금 기준에 의문 올해 충당금 더 쌓도록 감독 예정 배당 확대 금융지주 행보 '제동'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당국이 대손준비금을 추가로 쌓으라는 권고를 은행권이 받아들이면서 그간 당국과 은행이 대손충당금을 두고 벌이던 미묘한 신경전도 정리되는 분위기다. 다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은행의 판단보다 더 보수적인 기준으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입장이기에 올해도 충당금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코로나19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 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을 각 은행에 권고했다. 은행권은 금감원의 요청에 따라 총 8760억원의 대손준비금을 2021년 회계연도 기준 재무제표에 추가로 인식한다.
대손준비금은 은행이 국제회계기준(IFRS9) 기준으로 쌓은 충당금이 금융당국의 감독목적 회계기준 보다 적으면 그 차액만큼을 자본계정인 이익잉여금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해 적립하도록 하는 제도다. 자본유출을 줄여 손실흡수력을 높이도록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대손준비금이 늘어나면 그 액수만큼은 은행이 배당, 인수합병(M&A) 등에 활용할 수 없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올해 초부터 대손충당금 적립 문제로 줄다리기를 했다. 당국은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만큼 대손충당금을 더 늘리라고 주문했다. 4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1년 전과 비교해 20% 크게 줄였다. 하지만 은행은 회계기준에 따라 쌓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맞섰다. 모기업인 금융지주는 지난달 당국의 권고를 반영하지 않고 실적발표회를 강행했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올해는 대손준비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절충안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대손충당금은 대출자산 가운데 돌려받지 못할 금액을 미리 파악해 쌓는 것으로, 비용 항목이기 때문에 당기순익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대손준비금은 이익잉여금을 재분류하는 것으로 순익과는 관련이 없다. 이미 은행권이 실적 발표를 한 상황이기에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는 것 대신 대손준비금을 쌓도록 한 것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올해도 충당금을 더 많이 쌓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여전히 은행의 충당금 적립 방식이 현재의 불확실성을 다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IFRS9이 도입된 이후 은행이 인식한 대손충당금 규모와 당국이 평가한 금액의 차이가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대손준비금 잔액은 9조6886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6.8% 늘었다. 지난 2018년 제도 변경 후 대손준비금은 2019년 3.2%, 2020년 3.4% 계속 증가했다.
은행은 IFRS9 적용으로 대손충당금 인식 방식을 기존 발생손실 모형에서 더 엄격한 기준인 예상손실 모형으로 변경했다. 당국의 기준도 예상손실 모형에 기초하고 있기에 제도 변경은 대손준비금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제기된 바 있다. 금감원은 일단 시중은행이 과거부터 축적한 자체 데이터에 기초한 모형을 활용해 충당금을 적립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본다. 모델을 정교하게 구축할 수록 각 차주별 부도율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도 발생한 만큼 은행의 내부 모형보다 더 보수적인 기준으로 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올해 충당금 추가 적립 외에도 가계 부문 경기대응 완충자본 제도도 도입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은행은 자본을 추가로 늘려 예상치 못한 손실흡수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의 내부모형이 충분히 정밀하게 구축돼있지만 향후 불확실성을 다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이에 올해는 충당금을 더 많이 쌓도록 감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이번 방침으로 올해 배당을 늘리겠다는 금융지주의 계획은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충당금을 더 많이 쌓으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그만큼 감소하고, 지주로 보낼 배당도 줄어들 수 있다. 지주는 은행으로부터 받는 배당이 감소하면 외부 주주를 위한 배당 재원도 줄어든다. 이에 은행권의 불만은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이번 결정은 결국 지난 2020년에 은행권에 적용된 배당제한령과 비슷한 의미다”라며 “금융지주 올해 세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도 그만큼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