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에 다 맡기다 적기 놓친 정부···후속 개발 적극 지원해야

K-백신 나와도 국내 수요 없어···저개발 국가 공략해야 기업들 지원 요청에 미온적 대응한 정부, 전략 바꿔야

2022-02-11     염현아 기자

[시사저널e=염현아 기자] 국산 백신의 탄생이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국내 백신 개발사 중 줄곧 선두를 달려온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 상반기 첫 상용화를 앞두고 있고, 이어 유바이오로직스도 마지막 개발 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초 계획보단 늦어지긴 했지만, 정부가 그토록 바라온 ‘백신 주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국산 백신이 곧 나온다고 해도 공급할 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도 이미 국내 백신 접종률이 87%를 훌쩍 넘는 상황에서, 이제 국내 신규접종 수요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14일부터 미접종자를 대상으로 노바백스 백신이 접종될 예정이어서 그마저도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백신 수요 감소에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당초 정부는 개발업체들을 독려하기 위해 임상 3상에 착수한 개발사에 선구매를 약속했다. 다만 정부는 지난해 8월 3상에 돌입한 SK바사의 코로나19 백신 ‘GBP510’ 선구매를 식약처 승인 이후로 미뤘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내 기업들은 결국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도 비교적 접종률이 낮은 저개발 국가들을 집중 공략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업계는 국산 백신이 사실상 적기를 놓쳤다고 입을 모은다. 그 배경으로는 정부의 지원 부재를 꼽았다. 3상 비교임상에 필수적인 ‘대조백신’ 숙제를 기업에만 떠넘긴 데다, 임상 대상자 모집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평가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위탁생산(CMO)을 맡은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9월 대조백신용 AZ 백신을 무상으로 공급받았지만, 다른 업체들은 예외였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결국 필리핀 정부의 도움을 받아 대조백신 확보에 성공했다. 기업의 재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스스로 살 길을 찾은 것이다. 해결책을 찾지 못해 개발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적기는 놓쳤지만, 희망이 아주 없진 않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을 넘어 철마다 유행하는 ‘엔데믹’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부스터샷과 N차 접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만회할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다.

백신 자급화를 위해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백신 개발 완주를 돕고, N차 접종을 위한 후속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