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도 현대重도···K기업 M&A, SK하이닉스 빼고 모두 ‘가시밭길’

해외 결합심사에 가로막히거나 심사 과정 속 시너지 관련 고민 계속 이어져 수 년 째 빅딜 없는 삼성전자···엔비디아 ARM 인수 무산 경우와 달라 여전히 가능성 열려 있어

2022-02-10     엄민우 기자
/ 사진=셔터스톡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빅딜 발표는 곧 대박’이라는 시장의 오랜 공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대형 M&A(인수합병)를 추진했거나 진행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의 상황을 보면 시장의 예상과 달리 저마다 각자 다른 이유로 고전하는 모습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품고자 했던 현대중공업의 도전은 해외정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달 13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결론내렸다. 두 기업이 결합하면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시장에서 독과점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두 기업은 지난해 전세계에서 발주된 83척 중 절반이 넘는 47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부가가치가 높은 LNG선 시장공략에 집중해왔다.

글로벌기업은 기업결합 시 독과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 경쟁국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는 과거부터 있던 통과 절차지만 최근 자국이익 우선주의가 강해지면서 심사 문턱을 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대기업 내부인사는 “한때 회사에서 인수합병에 나설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외교상황 및 국제정세를 고려해 당장 진행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해외정부의 벽을 넘기 전에 국내에서부터 합병 효과가 깎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케이스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초 관련 국가들에 기업결합신청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매물로 나온 이후 주인을 찾지 못해 자칫 대규모 실직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대한항공이 인수자로 등장한 것이다. 업계에선 항공시장의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지는 상황 속 세계 10대 항공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가 길어지면서 일각에서 우려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자국 정부에서도 신중한데 해외 경쟁당국들이 승인에 속도를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공정위는 한 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작년 12월 29일 방향을 내놨다. 슬롯이나 운수권을 다시 배분하는 것을 조건으로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비행기 운영대수와 노선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고용 유지와 합병 시너지를 모두 기대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조건부 승인 관련 발표가 나오기 전인 지난해 10월부터 이미 “공정위가 조건부승인(운수권 재분배)을 검토하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부 승인이 관련 법령을 무시한 초법적인 절차이고, 막대한 공적자금 지원을 유발하며 결국 3만여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저해한다”고 성명서를 낸 바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9일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조건부 승인 관련 회사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회사의 최종 합병방향은 조만간 완전히 결론이 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수년 째 대형 인수합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법적리스크가 이어진 탓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반도체 패권전쟁이 심해져 삼성전자가 인수합병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 무산 등이 예로 거론되지만, 이를 무조건 삼성의 케이스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결합심사는 결국 독과점 가능성이 핵심인데,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ARM 인수는 각 국 정부와 대부분 업체들이 반대를 할 가능성이 높아 인수 무산이 예상됐었다”며 설명했다.

이는 점유율에 있어 독과점만 피할 수 있다면 반도체 업계 인수합병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문을 인수하는데 성공한 SK하이닉스가 그 예다. SK하아닉스는 인텔 낸드부문을 인수해도 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나 도시바보다 낮았기에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삼성 역시 메모리가 아닌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선 독과점 이슈를 피해 합병을 노려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