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으로 번진 ‘청약 미달 공포’···서울도 위태
서울 청약 경쟁률 두 자리로 내려 앉아 경기 미분양·인천 미계약 속출 “대출 규제·금리 인상 여파로 시장 위축”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지방에서 나타나던 ‘청약 미달 공포’가 수도권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경기·인천에선 청약이 미달되거나 미계약 사례가 속출했다. 서울 역시 올해 첫 분양에 나선 단지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릿수로 내려앉는 등 지난해 대비 청약 열기가 한풀 꺾였다. 집값 고점론에 대한 인식 확산과 강화된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등이 맞물려 청약 열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서울 첫 분양 단지인 강북구 ‘북서울자이 폴라리스’ 1순위 청약은 295가구 모집에 1만157명이 신청해 평균 34.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공급된 강동구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 1순위 청약 경쟁률(337.9 대 1)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평균 164대 1)에도 크게 못 미친다.
경기도에선 미분양 단지가 등장했다. 경기 안성 ‘우방아이유쉘 에스티지’는 지난 3~6일 1순위 청약 접수 결과 1순위 해당지역 마감에 실패했다. 916가구 모집에 청약통장이 314개만 접수됐다. 이어 공급된 ‘평촌자이아이파크’, ‘광주탄벌 서희스타힐스1단지’, ‘이천 센트레빌 레이크뷰’ 등은 평균 1순위 청약 경쟁률이 한 자릿수를 기록해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인천에선 청약 이후 미계약 사례가 나왔다. 인천 ‘송도자이더스타’는 지난해 11월 분양 당시 1순위 청약에서 평균 13대 1 경쟁률을 기록했으나 530여가구가 무더기로 계약을 포기했다. ‘송도 센트럴파크 리버리치’ 역시 평균 5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계약 해지가 이어졌다.
업계에선 지방에서 시작된 청약 한파가 수도권으로 번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방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입주자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한 단치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지방에 공급된 439개 단지 중 26.7%(117곳)에서 미달 사태가 났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경기·인천에서는 청약 미달 단지가 한곳도 없었다.
지방에선 새해 들어서도 청약 미달 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일 607가구 입주자를 모집한 충북 ‘음성 동분 디 이스트’는 2순위까지 모집했지만 169가구 미달이 발생했다. 이어 4일 대구 ‘달서 롯데캐슬 센트럴스카이’에서도 4개 타입 모두 2순위까지 모집했지만, 가구 수를 다 채우지 못했다.
청약 열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은 건 최근 대구와 세종 등 일부 지역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되고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집값 상승세가 주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값 단기 고점론에 대한 인식 확산과 낮은 시세차익, 높은 분양가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분양시장은 더욱 불안해질 전망이다. 올해부터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 대출이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되는 등 대출 규제가 강화됐다. 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하는 중도금 집단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도 분양 경기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이달 분양경기실사지수(HSSI)는 76.2로 전월 대비 12.2포인트 하락했다. 100을 초과하면 분양 전망이 긍정적, 100 미만이면 부적정이라는 의미다. 특히 서울은 전월 대비 9.2포인트 하락한 85.0을 기록했다. 서울의 HSSI 전망치가 9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20년 10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미분양 사태를 막기 위해 청약 일정을 변경하고 분양가를 조정하는 단지도 등장했다. 서울 강북 ‘칸타빌 수유팰리스’(일반분양 217가구)는 이달 25일 예정됐던 1순위 청약 일정을 취소했다. 이 단지는 9억원 초과 평형에 대한 중도금 대출 여부와 분양가에 대해 다시 검토하고 분양을 재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입지 조건이나 분양가에 따라 청약 미달이나 미계약 단지가 늘어나는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여파로 수도권 분양 시장도 흥행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며 “분양가 상한제 적용되는 단지나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단지는 수요가 몰리겠지만, 기존에 공급이 많았거나 입지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에선 미달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