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시장서 잘 나가던 KB증권, 현대엔지니어링 흥행 실패 ‘쓴맛’
조단위 대어로 평가 됐지만 수요예측서 부진 알려져 정의선 회장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 돼 후폭풍 주목 IPO 강자로 발돋움 하던 KB증권 평판에 악재 평가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IPO(기업공개) 주관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KB증권이 암초를 만났다. 미래에셋증권·골드만삭스와 공동으로 상장 주관에 나선 현대엔지니어링이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참패한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지배구조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신흥 IPO 강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KB증권에 중요한 딜이었다. 일각에선 적극적인 딜 수임이 되레 독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 ‘대어’ 현대엔지니어링 수요예측 부진···정의선 회장 계획 차질 빚나
27일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 25~26일 양일 간 진행한 기관 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 100대 1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최종 집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올해 IPO 대어로 기대감이 컸던 것을 감안하면 시장은 사실상 흥행 실패로 보고 있다.
수요예측 부진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의 자금 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하게 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번 IPO를 통해 최대 1조2100억원을 조달하려고 했다. 만일 공모가가 희망 밴드(5만7900~7만5700원) 하단에 위치할 경우 공모 금액은 9264억원으로 최상단 대비 2800억원 이상 줄어든다. 공모가 밴드 하단을 밑돌게 되면 조달 할 수 있는 자금은 더욱 감소한다.
무엇보다 정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요예측 참패는 뼈아플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는 정 회장은 지분의 60%를 구주 매출해 최대 4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수혈하려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이번 IPO에서 최대 1000억원이 넘는 구주 매출에 나설 계획이었다. 증권업계에선 해당 자금이 그룹의 순환출자 해소와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쓰일 것으로 봤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수요예측 흥행 실패는 다양한 원인이 혼재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외 증시가 미국의 긴축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하락 곡선을 그린 데다 HDC현대산업개발 사태로 건설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여기에 공모가 상단 기준 6조원 규모의 몸값도 수요예측 부진에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는 모회사인 현대건설의 4조3000억원 보다 높다.
정 회장 일가의 구주매출이 부담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IPO의 목적 중 하나가 정 회장의 개인 이익인 그룹 지배권 강화와 통한다는 측면에서 투자자들이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이번 IPO로 공모하는 물량은 1600만주인데 이 중 신주는 25%인 400만주에 불과하다. 나머지 75%인 1200만주는 정 회장을 비롯한 특수 관계인 5인이 매각한다.
◇ 잘 나가던 KB증권 평판에 악재···적극적 딜 수임 부작용 지적도
현대엔지니어링의 흥행 참패로 상장 주관사들의 부담은 커지게 됐다. 상장 철회나 연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어 특히 IPO 강자로 발돋움 하고 있는 KB증권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는 딜이 됐다. 통상 지배구조와 연결된 딜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업계 평판뿐만 아니라 해당 그룹으로부터 채권 발행이나 유상증자, M&A(인수합병) 등 부가적인 딜 수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있는 그룹으로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많은 일감이 나올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 미래차 산업과 관련해 M&A 시장에서도 굵직한 딜이 일어날 수 있는 그룹사이기도 하다. 지배구조의 첫 단추인 이번 IPO가 상장 주관사 입장에서는 점수를 딸 수 있는 중요한 장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KB증권의 적극적인 IPO 딜 수임이 부작용으로 돌아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KB증권은 그동안 DCM(부채자본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왔지만 ECM(주식자본시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이에 전사적으로 IPO 강화에 나섰고 딜 수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상태였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LG에너지솔루션, 원스토어 등 상장 주관을 따내며 굵직한 성과를 냈지만 이번에는 결과가 좋지 못했던 것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은 대표적으로 어려운 IPO 딜이다. 잘 만 해낸다면 좋은 트랙레코드를 쌓을 수 있지만 성장성을 부각하기 쉽지 않고 오너 일가의 구주 매출이 많아 이들의 배불리기에 나선다는 비판을 받기 쉬워 흥행이 어렵다”며 “IPO 주관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고 있는 시점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딜을 잘 구분해서 수행할 필요가 있는데 대형 IPO다 보니 KB증권이 욕심을 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