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상승·규제강화·증시부진’ 3중고···기업 자금 조달 비상등 켜지나

회사채 미매각 사례 연이어 나와···비우량도 흥행했던 상반기와 대조적 사모 CB에 리픽싱 상향 도입···과거 대비 낮아진 매력, 시장에 미칠 영향 주목 증시 불안정 지속···IPO·유증·메자닌 등 투심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도

2021-11-22     송준영 기자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국내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시장 금리 상승 추세에 회사채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는 데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주된 자금 조달 창구인 전환사채(CB) 시장 역시 규제를 앞둔 까닭이다. 여기에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상장사들의 신주 발행 환경도 나빠진 상태다. 

◇ 흥행 실패 사례 다수···상반기와 달라진 회사채 시장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4분기 들어 회사채 시장에 냉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시중 금리 상승 여파에 채권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수요자들이 많아지면서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 나왔다하면 오버부킹(초과청약)됐던 올해 상반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실제 이달 9일 수요예측에 나선 이랜드월드(BBB)는 2년만기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서 10억원의 주문을 받는데 그쳤다. 회사채 금리 밴드를 연 4.5~5.5%로 비교적 높게 제시하고 채권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내걸었지만 금리 인상 추세로 보수적으로 변한 시장의 시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회사채 시장의 분위기 변화는 지난 9월 말부터 감지됐다. 당시 수요예측에 나섰던 풀무원식품(A-)은 만기 5년짜리 회사채를 500억원어치 모집했는데 320억원이 미달됐다. 지난달엔 더블유게임즈(A-~A0)가 500억원 규모의 2·3년물 회사채 모집에 나섰지만 주문액은 70억원에 그쳤다. 이밖에 디티알오토모티브(A0), 우리종합금융(A0), HK이노엔(A-) 등도 기관 수요예측에서 완판에 실패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 금리 상승에 따른 채권 평가 손실 우려가 발생하면서 기관의 소극적인 움직임이 예상된다. 업계에선 이미 올해의 경우 사실상 기관들이 북클로징(장부마감)에 들어간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글로벌 금리 인상 추세에 시장 분위기가 쉽게 반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우려가 나온다. 

◇ 리픽싱 상향 제도 도입···사모 CB 위축될 지 주목

성장성은 있으나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주요 자금조달 창구인 CB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CB는 일정한 조건에 따라 발행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해당 회사의 주가가 상승해 시세차익이 기대되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채권 형태로 확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많았던 자금 조달 창구였다. CB는 올해 들어서만 8조5041억원이 발행됐다.

그러나 CB와 관련된 제도가 변화되면서 시장 위축 가능성도 함께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해 사모발행 CB에 한해 주식 전환가액 상향 조정 의무를 부과키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발행사의 주가가 떨어질 경우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액을 낮추는 규정만 있었다. 

이는 CB투자자 입장에서 시세차익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됐다.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된 이후 주가가 상승할 경우, 낮아진 전환가액으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낮아진 전환가액에 따라 보유 지분이 과도하게 희석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생기게 된다. 이에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고 주가가 상승할 경우에도 전환가액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자료=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 / 표=정승아 디자이너.

CB 발행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모 CB의 투자 매력이 기존 대비 낮아지면서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달 들어 CB 발행액이 급증한 것이 이에 대한 반증으로 해석되는데, 이달 CB 발행액은 9512억원으로 지난 9월(3588억원)과 10월(5421억원) 대비 크게 증가했다. 개정안이 발표된 5월 이후인 6월과 7월에도 1조원이 넘게 CB가 발행됐다. 제도가 바뀌기 전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CB 발행에 나섰다는 풀이다.

◇ 상승세 멈춘 증시, 투심 악화에 자금 조달 영향받나 

증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자금 조달 측면에서 부정적인 요인이다. 투자 심리가 악화되면서 신주 발행에 참여하는 수요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국의 금리 인상 이슈와 경기 회복 지연 우려에 코스피는 지난 6월 25일 장중 최고치인 3316.08을 기록한 이후 3000선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고, 코스닥 지수 역시 좀처럼 고점을 깨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미 IPO(기업 공개) 시장은 증시 영향을 받아 ‘부익부빈익빈’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대어로 꼽혔던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과 SM상선은 상장을 철회했고, 지난 9월 이후 현재까지 상장한 기업 30곳 중 2곳을 제외하면 ‘따상’(공모가 두 배에서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시장에 나왔다하면 흥행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시 부진으로 투자 심리가 악화될 경우 유상증자나 CB와 같은 메자닌을 통한 자금 조달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기업들이 타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곳들에 최근 환경변화의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