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계대출 규제에 발목 잡힌 ‘중금리대출 활성화’ 정책

중금리대출 늘리랴 가계대출 총량 관리하랴 혼란스러운 금융사들 일괄적인 가계대출 규제···중·저신용자 ‘대출절벽’ 부작용 초래해

2021-10-19     김희진 기자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중·저신용자에 대한 중금리대출을 늘리고 대출금리도 낮추어 나가겠습니다."

지난 4월 26일 금융위가 ‘중금리대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으면서 밝힌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금융시장 상황을 보면 금융위의 정책방향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절벽은 점점 심화되고 있으며 중금리대출 상품의 금리 역시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의 중금리대출 활성화 정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중금리대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민간 중금리대출에 대해 업권별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한편 인터넷전문은행에는 2023년까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30% 이상 늘리지 못할 경우 신사업 인·허가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도입하는 등 중금리대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었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중금리대출 활성화 정책은 금융당국이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자승자박’한 꼴이 돼버렸다. 당초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 적용 대상에서 중금리대출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결국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중금리대출을 포함한 신규 대출 취급을 옥죌 수밖에 없게 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전문은행과 저축은행 업권은 특히 난감하다. 두 업권 모두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저신용자를 위한 중금리대출 공급에 주력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맞춤과 동시에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중금리 대출도 늘리라고 하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중금리대출에도 일괄적인 규제를 적용하면서 금융당국이 내걸었던 중금리대출 활성화 정책은 힘을 잃고 말았다. 가계대출 규제로 높아진 대출 문턱은 고스란히 중·저신용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제1금융권은 물론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이용할 곳이 없는 이들이 향할 곳은 불법사금융뿐인 까닭이다.

금융당국은 내년에도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이어가며 강도 높은 관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대출 규제 방식은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해답이 될 수 없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겠다는 목표에만 매몰돼 중·저신용자들의 금융접근성을 외면해서는 설령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더라도 실수요자 및 금융 취약계층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는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괄적인 규제책이 아닌 대출의 성격 및 실수요자들을 고려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