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국감] 대선 이슈에 가려지는 금융권 현안···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등 ‘뒷전’
국감 시작 하루 전까지 일반 증인 채택 0명···대장동 개발 증인 채택 ‘줄다리기’ 우리·NH농협은행 등 금융사 ‘안도’···손보업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이슈화 기회 무산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정부 부처 및 공공 기관의 1년 성과를 평가하는 국정감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모펀드 사태를 중심으로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에게 맹폭이 가해졌던 지난해 국감과는 달리 올해 국감에서는 금융권 현안들이 논의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내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있는만큼 야당에서는 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공격하기 위해 ‘대장동 개발’ 관련 질문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며 여당 역시 야당 인사 관련 이슈로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DLF(파생결합펀드) 중징계 취소 행정소송 문제로 국감의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우리은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으며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핀테크 규제 논의 등도 대선 이슈에 가려질 전망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의 현안 처리가 시급한 손해보험업계는 이슈화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야당, 유력 대선 주자 이재명 관련 의혹 맹폭 예상···여당, 관련 증인 채택 거부
30일 국회 및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감 일정이 내일 시작될 예정이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은 아직 일반 증인 명단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무위는 내달 1일과 5일 각각 국무조정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상으로 국감을 진행하고 6일 금융위원회를 시작으로 금융권에 대한 감사에 돌입한다.
매년 금융권 국감에는 금융위, 금감원 내 기관 증인뿐만 아니라 금융사 임원들도 일반 증인으로 다수 출석해왔다. 지난해만해도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박성호 하나은행장(당시 부행장),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올해에는 기관증인들만이 출석하는 ‘맹탕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증인 채택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장동 개발, 화천대유 특혜 의혹에 여야 의원들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장동 개발에 연루돼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수사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이 신청한 증인 명단에는 증권사, 은행 관계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29일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후보의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사업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며 “국회가 국감을 통해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채택,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는 것이 국민 알 권리뿐만 아니라 정무위의 책무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천대유가 누구의 것이냐’고 추석 전부터 현수막을 내걸고 지속적으로 정치공세를 해왔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다 국민의힘 관련자들”이라며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신속하게 추진하는 마당에 국회에서 증인을 부른다고 한들 수사 중인 사건이라 답변도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오히려 신속한 진상규명에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무위 의원들은 우선 금융위, 금감원 국감은 일반 증인 없이 진행하면서 오는 21일 예정된 금융권 종합감사에 부를 증인 명단을 조율할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특히 임원, CEO들의 증인 채택 가능성이 거론됐던 우리금융지주, NH농협은행 등이 간접적인 혜택을 받게 됐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달 금감원과의 DLF 사태 중징계 취소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를 하면서 일부 의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지난 14일에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12명의 여당 의원들이 성명서를 통해 금감원의 항소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정치권의 압박이 금감원의 항소 결정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정무위 의원들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감장에서도 DLF사태 등에 대한 책임을 다시 한 번 추궁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과정에서 손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최근 대장동 개발 이슈로 인해 DLF 사태 관련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권준학 농협은행장의 경우 암호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문제와 관련해서 증인으로 채택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농협은행은 빗썸과 코인원 두 곳의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해주고 있다. 은행들 중 가장 많은 곳에 실명계좌를 발급해주고 있는만큼 여당 의원들은 심사 과정의 공정성 등을 추궁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28일 법안소위에서도 합의점 도출 실패···논의 장기화 불가피
이들 금융사가 대장동 개발 이슈로 인한 간접적 혜택을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손보업계, 핀테크 업계 등은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슈화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손보업계의 경우 오랜 숙원 사업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감을 통해 이슈화되기를 기대해왔으나 점차 가능성 사라져가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올해 금융위의 ‘5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선정되며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그 어느때보다 높였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장기간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 28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도 관련 논의가 일부 이뤄졌으나 역시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일부 정무위 의원들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업계에 다양한 의견을 구한 것으로 안다”며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국감장에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제는 다뤄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슈에 묻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최대한 손보업계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금융당국의 규제로 인해 영업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핀테크 업계도 마찬가지다. 금융위는 지난 7일 금융플랫폼들이 제공해왔던 ▲금융상품 정보제공 ▲금융상품 비교·추천 ▲가입 보험상품 분석서비스 등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중개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그로 인해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 계도 기간 종료 이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핀테크 기업들은 혁신 산업 육성 등의 이유로 정무위 의원들이 국감장에서 금융위를 압박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으나 이 역시 대장동 개발 이슈에 가려질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