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전유물은 옛말···강북서 최고급 아파트 전쟁

북가좌6구역, ‘르엘 vs 아크로’···고급 브랜드 간 경쟁 ‘이례적’ “서울 정비사업장 경쟁 치열···집값 영향, 조합 요구 확산”

2021-08-09     길해성 기자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강남권과 한강변에 주로 적용됐던 최고급 아파트 브랜드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자사 최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앞다퉈 제안하고 나섰다. 정비사업 수주 가뭄에 건설사들의 브랜드 전쟁이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북가좌6구역, 롯데건설 ‘르엘’ 내놓자 DL이앤씨 ‘아크로’ 맞불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서울 북가좌6구역 재건축 조합에 기존에 제안했던 ‘드레브 372’에 ‘아크로’(ACRO)를 추가해 ‘아크로 드레브 372’를 제시했다. 앞서 DL이앤씨는 지난달 조합에 제출한 제안서에 드레브 372를 내놓는 동시에 과반의 조합이 원할 경우 협의를 통해 자사 고급 브랜드인 아크로도 반영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DL이앤씨가 강북에 아크로를 붙인 건 ‘성수 아크로 서울포르세트’에 이어 두 번째다. 아크로는 시장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고급 브랜드로 강남권이나 한강변 지역에 주로 적용돼 왔다. 지난해 다방이 실시한 프리미엄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31%를 차지하며 현대건설 ‘디에이치’(29.9%)와 롯데건설 ‘르엘’(22.4%)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 재개발 사업 수주전에는 DL이앤씨의 ‘아크로’와 롯데건설의 ‘르엘’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DL이앤씨의 행보는 이례적인 조건을 내세운 배경은 ‘르엘’을 들고 나온 롯데건설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르엘은 한정판을 의미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의 영어 약자인 ‘르’(LE)와 시그니엘·에비뉴얼 등에서 롯데의 상징으로 쓰이는 접미사 ‘엘’(EL)을 결합해 만든 롯데건설의 최고급 단지 브랜드다. 롯데건설은 대치2지구·반포우성·신반포 등 강남권에만 적용했던 르엘을 강북 최초로 북가좌6구역에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강북서 최고급 브랜드 경쟁 ‘이례적’···“수주전 치열하고 조합원 눈높이 높아져” 

강남이 아닌 강북에서 고급 브랜드끼리 수주전을 펼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에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귀해지면서 수주전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조합원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전례 없던 고급 브랜드 경쟁까지 펼쳐지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조합과 건설사가 고급 브랜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적용 여부에 따라 아파트 위상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급 브랜드가 적용된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해당 지역의 ‘대장 아파트’로 분류돼 시세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한강변 최고가 아파트로 통하는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는 지난 6월 전용면적 84㎡가 역대 최고가인 39억8000만원에 팔렸다. 3.3㎡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1억1706만원으로 같은 평형대 역대 최고가다. 롯데건설이 지난해 분양한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의 경우 1순위 당해지역 98가구 모집에 1만1205명이 신청하면서 평균 경쟁률이 114.3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급 브랜드 요구 확산···건설사 ‘희소성’ 잃을까 고심

집값이 달린 문제인 만큼 최근 강북권과 지방의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도 고급 브랜드를 적용해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시공사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조합은 시공사인 롯데·한화건설 컨소시엄에 르엘 또는 ‘갤러리아포레’ 브랜드 적용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일부 조합원이 시공사 해임 동의서를 걷는 중이다.

광주 최대 재개발 사업지인 서구 광천동 재개발 조합도 DL이앤씨 컨소시엄이 아크로를 적용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5월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은 르엘 적용을 놓고 롯데건설과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계약 해지를 단행했다.

건설사들은 난감한 상황이 됐다. 고급 브랜드를 남발할 경우 희소성이 사라지고 오히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부작용이 존재할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수주를 위한 유인책으로 고급 브랜드를 활용하면서도 기존에 강조한 희소성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며 “당장은 수주에 유리할 수 있지만 향후 일반 브랜드와의 경계가 사라져 수주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