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인형 제작해준다며 돈 받고 잠적···피해자들 집단 고소 나선다

SNS 통해 보이그룹 ‘EXO’ 굿즈 제작한다며 돈 받아 피해액 3천만원 이상···중국·필리핀 등 해외피해 사례도 형법상 ‘사기죄’ 형사고소···손해배상 소송 이어질 가능성

2021-07-30     주재한 기자
/ 그래픽=집단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홈페이지 갈무리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아이돌 팬의 마음을 갖고 사기 치는 것이 아닌가.”

30대 여성 박아무개씨는 지난해 11월 평소 좋아하던 가수의 인형을 제작 판매한다는 SNS글을 접했다. 봉제인형이 아닌 도자기로 만든 구체관절인형(관절 부위를 구체로 만들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다소 높은 가격대였지만 희소성을 생각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글 작성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1차 제작품이 잘 배송됐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다. 박씨가 보낸 금원은 16만원이 넘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주문한 제품이 도착하지 않았다. 지연배송과 관련한 사과 글이 세 차례 올라왔고, 글 작성자는 끝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유명 아이돌 그룹의 인형 제작을 제안한 뒤 다수의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아 잠적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구매 피해자들은 집단으로 형사고소를 진행하는 한편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계획이다.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모델로 인형을 제작하겠다며 SNS에 올라온 글. / 사진=피해자 박아무개씨 제공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팬 60여명은 인형 제작을 이유로 금원을 받은 뒤 잠적한 판매자와 인형 제작사 대표를 형법상 사기 혐의로 고소 할 계획이다.

이들에 따르면, 트위터 아이디 ‘리틀슈’ ‘리틀됴’ ‘리틀백’은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EXO의 멤버 중 일부를 모델로 한 구체관절인형 구매를 제안하고 다수의 피해자로부터 비용을 받았다. 온라인 상에서 총대(선물 서포트나 구매를 주관하는 인물)로 통칭되는 역할을 한 이 인물은 공동구매를 제안하면서, 비용만 받고 약속된 기간에 물품을 배송해주지 않았다.

이른바 ‘총대’가 가로챈 금액은 3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피해자들은 추정했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단체 주문도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중 일부는 이미 서울강남경찰서에 ‘총대’를 형사고소했으며, 피해자 중 한명인 박씨도 ‘총대’를 고소 할 피해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박씨는 “저와 유사한 피해를 겪은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단체 카카오톡 방을 열어 피해사례를 모으고 있다”며 “수사를 독려하는 한편 피해 내역을 집계해 경찰에 제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총대’의 이번 행위는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형법 제347조(사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형사 고소를 대리하는 박지영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인형을 제작 및 공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팬들을 기망해 재물을 취득하였다면 사기죄로 처벌될 수 있다”며 “인형 제작을 위해 돈을 수령할 당시 이 돈을 인형 제작을 위해 사용할 의사가 없었거나, 실제 다른 팬덤 인형 제작 등에 사용함으로써 인형을 제작할 능력이 없었다면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사기죄의 요건인 ‘기망의 의사’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박 변호사는 “이른바 ‘총대’는 팬들로부터 돈을 지급받았음에도 거의 제작을 하지 않았고, 제작이 지연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새로운 계약 체결을 진행했다. 제작완료기간으로부터 6개월 이상이 지났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환불이나 제작완료 요청에도 전화를 받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사기의 기망의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인형제작과 배송이 지연되자 올라온 공지 글. / 사진=피해자 박아무개씨 제공.

박 변호사는 ‘총대’가 개인적인 사유로 인형 제작을 하지 못하더라도 팬들의 피해를 충분히 예견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기망 또한 성립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집단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고소인을 모집 중이다.

이번 고소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형사고소는 피고소인을 처벌하기 위한 절차로 피해금원을 돌려받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피고소인이 기소돼 형사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에 배상명령을 신청하고, 이행지체에 대한 계약해지 후 손해배상액을 청구하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하겠다고 예고했다.

박 변호사는 “본 사건은 순수한 팬심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한 사건으로 행위자를 엄벌하고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민사상 관련 절차까지 진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