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vs 기성세대’···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미묘한 표정관리

정년연장·성과급에서 입장차이 보이며 세대간 갈등 커져 일각선 정 회장이 그룹 내 MZ세대 영향력 커지길 바란다는 시각도···강성노조 대항마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기업 전환 위해선 기존 세대보다 MZ세대 필요성 커

2021-07-01     박성수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현대자동차그룹내 세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명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로 불리는 2030세대와 5060 중심의 기성세대간 대립이 극으로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 노조는 정년 연장을 외치고 있으며, MZ세대는 성과급 및 기존 강성 노조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MZ세대의 반란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겐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강성 노조로 인해 고임금·저비용 구조가 고착화되고 해외 투자까지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기성세대의 대항마로 나온 MZ세대를 통해 그룹 미래 전략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전날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사측은 기본급 5만원 인상, 성과급 100%+300만원, 격려금 200만원 지급 등을 제시했으나 노조는 사측 제시안이 부족하다며 교섭을 결렬하고 파업 준비에 나섰다.

앞서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성과급 30% 지급, 정년 연장 등을 요구했다. 이중 핵심은 정년 연장이다. 노조는 기존 만 60세 정년을 64세까지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년 연장에 대해서는 사측은 물론, 사내 MZ세대에서도 반발이 크다. 정년 연장은 장기 근속자에게만 유리할 뿐이며, 고연봉자 비중이 늘어나면서 저연차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MZ세대는 정년 연장보다는 합당한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2012년 ‘성과급 500%+일시금 950만원’이 지급된 이후 매년 성과급이 줄어들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상황 속에 임금 동결과 함께 성과급 150%+120만원이 지급됐다.

그룹 내에선 낮은 성과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계 순위 2위인 현대차 신입 초봉 순위가 10위권으로 밀린 데다, 성과급 마저 줄어들면서 실질 임금이 이전 세대보다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기존 세대는 이미 이전에 오른 연봉을 바탕으로, 정년 연장까지 요구하고 있으니 MZ세대 입장에선 불만이 클 수 밖에 없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한 현대차 MZ세대 직원이 “노조는 선배 조합원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위치에 있으니 정년 요구에 불만을 가지지 말라는 말까지 하며, MZ세대의 미래 임금을 포기하려고 하고 있다”는 청원 내용을 올렸다. 또 다른 현대차 MZ 세대 직원은 “그동안 강성 노조로 인해 대외적인 현대차 이미지는 망가질대로 망가졌다”며 “귀족 노조의 혜택은 기성세대들이 보고, 피해는 왜 우리가 감당해야 하나”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현대차 젊은 세대 직원들은 최근 사무·연구직 노조를 출범하고, MZ세대 직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 편들지는 못하고···MZ세대 바라보는 정의선 회장 속내는

정의선 회장은 수석 부회장 시절부터 현대차 세대교체를 준비해왔다. 그룹 회장직에 오른 후에는 임원 교체에 속도를 내며 새로 조직을 정비했다.

정 회장의 세대교체는 임직원은 물론 그룹 경영 방향성까지 아우른다. 현대차그룹은 50년 넘게 내연기관차 제조업체로 사업을 꾸려왔으나, 정 회장 체제에서는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는 물론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까지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아이오닉5·EV6 등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며 친환경차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지난달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마치며 로봇관련 신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또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을 통해 완전자율주행 관련 기술 개발에 힘쓰는 한편, UAM 사업부를 신설하고 드론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UAM 사업을 구체화 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생산직 위주의 기성세대보다는 개발·연구직을 포함한 MZ세대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 회장이 그룹 내 MZ세대 영향력이 커지길 은근히 바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강성노조 영향으로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일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생산 경쟁력이 다른 전세계 완성차 기업 대비 떨어진 상태다. 임금이 저렴한 해외에 공장을 증설하려고 해도 노조 파업이 두려워 실행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현지 생산 전기차 지원을 늘린다고 발표하면서 현대차도 현지 생산을 위해 투자를 늘릴 계획이었으나, 노조 반발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전기차 시대를 맞아 내연기관 시대 대비 생산 인력 비중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 직 위주의 강성 노조는 걸림돌이다.

이에 현대차그룹 내 MZ세대 입김이 커질 경우, 그들이 원하는 성과급 지급을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올해 초 정 회장이 직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성과급 기준 개선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성과급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직원들이 회사에 기여한 데 비해 존중을 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굉장히 죄송스럽게 생각했고, 저 자신도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연내 성과와 보상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각사 최고경영자(CEO)가 현실에 맞게 할 수 있게 독려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 회장이 전면적으로 나서 MZ세대 편을 들긴 어려운 입장이다. 자칫 강성 노조가 이를 빌미로 파업을 강행할 경우 생산 차질에 따른 실적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사무직 노조가 정 회장과의 상견례를 요청했지만 불발에 그쳤다”며 “정 회장 입장에선 사무직 노조와의 만남이 생산직 노조 심기를 건드릴 수 있어 조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