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찍으세요”···사진 막는대신 권하는 명품 매장 ‘구찌가옥’
전체 투어시켜주는 명품관 도슨트 형식 기존 매장과 달리 단독·개성 상품 위주
[시사저널e=변소인 기자] “여기서 사진 좀 찍으세요. 예쁘잖아요. 저는 비켜드릴게요.”
콧대 높은 명품 매장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다. 명품 투어는 물론 인생샷 기회도 제공한다. SNS 속 사진으로 입소문을 타는 것이 구찌의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전략이다.
개장 3일째인 지난달 31일 오후, 구찌 가옥을 찾았다. 구찌 가옥은 지난달 29일 문을 열었다. 6명의 셀럽이 개장을 축하했고 이어진 주말 입장 대기만 3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명 여배우도 초청 없이 구경을 위해 구찌 가옥을 방문하기도 했다.
구찌 가옥은 이태원역에서 도보 7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했다. 이태원의 한 유명 클럽 바로 옆에 자리했다. 우아한 명품들이 즐비한 청담 명품거리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백화점 업계에서 구찌의 한남동행을 의아해하는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름대로 한국 전통미를 살린 기와 인테리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내부는 휘황찬란한 클럽 분위기에 가까웠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메탈릭 타일과 화려한 조명이 ‘힙하다’를 외치고 있었다. 개성 넘치는 이태원 본연의 분위기에 더 초점을 맞췄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색동 포인트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늘 각 잡힌 정장을 입고 있던 명품관 직원들과 달리 이들은 생활한복을 닮은 헐렁한 유니폼을 입었다. 홀스빗 로퍼로 구찌의 감성을 잃지는 않았지만 한 매장을 위해서 유니폼까지 새롭게 제작한 것은 의외였다.
동선을 따라 가장 먼저 만난 상품은 시계와 주얼리였다. 보통 구찌 매장에 들어서면 핸드백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는데 이곳은 주얼리와 첫 대면을 하게 했다. 오직 구찌 가옥에서만 판매하는 단독상품을 전면에 배치한 것도 눈에 띄었다. 한국 전통의 ‘색동’ 문양을 본뜬 팔찌와 반지는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직원은 전했다.
항상 유리관에 들어있던 시계와 주얼리가 유리관도 없이 나와 있어서 쉽게 만져보고 착용할 수 있다. 직원에게 원하는 디자인을 골라달라고 말할 필요 없이 마치 플리마켓에서 액세서리를 고르듯 여러 디자인을 착용하며 스스로 고를 수 있다.
1층 한쪽에는 구찌 가옥의 번창을 비는 디지털 고사상도 마련됐다. 방문객이 화면을 터치해 원하는 대로 고사상을 차릴 수 있도록 한 뒤 해당 화면을 전송한다.
2층은 남성매장, 3, 4층은 여성매장이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4층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 투어가 시작됐다. 원하는 상품을 묻고 그 상품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해당 상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도슨트처럼 직원이 구찌 가옥 전체를 안내했다.
1~4층을 관통하는 스파이럴 계단은 새로운 쇼핑 동선을 제공했다. 작은 쇼핑몰에 온 것처럼 원하는 제품을 찾아 자유롭고 넓게 공간을 누비는 방식이다.
특이한 것은 공간뿐이 아니었다. 디스플레이도 기존 매장과 크게 달랐다. 구찌 가옥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은 곳곳에 좋은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구찌가 한국 한정으로 내놓은 상품도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스테디라인이자 기본라인인 오피디아 라인은 찾아볼 수 없다.
직원에게 오피디아 라인은 왜 전시하지 않느냐고 묻자 “구찌 가옥은 새로운 제품, 유니크한 제품들을 주로 선보이기 위해 전시공간을 꾸몄다”며 “오피디아 라인은 굳이 전시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알아서 찾기 때문에 진열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같은 날, 구찌 가옥 개장 전 신규 매장인 여의도 더현대 서울 구찌 매장을 방문해 비교한 결과 상품 구색과 진열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더현대 서울 구찌 매장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오피디아 제품도 함께 진열됐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이더라도 색상차가 뚜렷했다. 백화점 매장이 보편적인 색상을 전면에 내세운 반면 구찌 가옥은 독특하고 새로운 제품을 앞세웠다.
제품을 포장하는 코너에 보자기와 노리개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만 제공되는 특별서비스다. 구매하면 구찌 가옥 스티커와 함께 구찌 가옥 메탈이 달린 노리개와 구멍이 뚫린 종이가방도 제공한다.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도 재미였다. 손잡이가 없는 이곳 화장실은 미로처럼 구성돼 있다. 메탈릭한 문을 세 번 정도 밀고 들어가야 화장실에 진입할 수 있다. 화장실 벽면에는 4가지 종류의 구찌 향수가 놓여있는데 직원은 꼭 뿌려보라고 권유했다. 초고가의 프리미엄 파인 주얼리, 테이블웨어도 국내 구찌 매장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여 볼거리가 충분했다.
투어를 다니면서 직원은 피팅룸, 프라이빗룸, 메탈릭 벽면 등에서 사진 촬영을 유도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는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요소였다. 대개 명품 매장은 사진 촬영이 금지인데 이곳은 오히려 권한다. 직원은 SNS를 통해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구찌 가옥은 기존 명품이 갖는 고고한 이미지를 탈피해 한층 더 젊어지고 친절해졌다. 그만큼 명품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일조한다. 직원들 간에도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자유롭게 이동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밀도를 보여줬다. 명품 매장에서 찾아보기 힘든가벼운 농담도 이어졌다.
구찌가옥에 오기 전 현대백화점 구찌매장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백화점과 지금 매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며 “이태원이란 지역은 다양성이 특징인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 구찌가옥은 새로운 느낌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