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퇴진···이재용 부회장 감형 의식했나

연임 유력시됐지만···불법 승계 관련 여파 못 피해 함께 기소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도 물러나 주요 감형 요소인 준법감시위원회 평가 의식한 듯 “고발된 임원 조치 이뤄지지 않아, 내부 준법감시 한계”

2020-12-08     길해성 기자
연임이 유력시되던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왼쪽)이 물러났다. 이는 경영권 불법 승계 및 국정농단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감형을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연임이 유력시되던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이 취임 3년 만에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인사를 두고 업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및 국정농단 재판과 관련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불법 승계 의혹에 연루된 임원진을 교체해 준법 의지를 보여주는 등 이 부회장의 감형을 위한 행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8일 삼성물산은 2021년 정기인사를 발표하며 오세철 부사장을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내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8년 1월부터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이끌어온 이영호 사장은 물러나게 됐다. 당초 이 사장은 정비사업 시장에서 래미안의 부활을 이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연임이 유력시됐다.

업계에선 이 사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불법 승계 의혹 재판에 연루된 임원들에 대한 조치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활동이 미흡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준감위의 활동은 이 부회장의 주요 감형 요소로 꼽힌다. 

이 사장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혐의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등과 함께 기소된 상태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도 이번 정기 인사를 통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장이 교체된 것은 2011년 출범 이후 처음이다.

7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에선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로 고발된 삼성그룹 임원들에 대한 조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내부 준법감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 사진=연합뉴스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한 임원 교체는 어제(7일) 열린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서도 거론됐다. 재판부가 지정한 전문심리위원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삼성 합병 관련 형사사건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사건 등 관련해서는 조사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고발된 임원들에 대한 조치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것을 보면 관계사 내부 조직에 의한 준법감시는 아직 최고경영진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 사장은 최치훈 전 사장의 후임으로 2018년 1월 건설부문 수장에 올랐다. 삼성SDI 경영관리와 감사담당, 삼성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을 지낸 재무 전문가다. 삼성물산에서도 최고재무책임자(CFO) 건설부문 경영지원실장을 겸하며 삼성물산의 성장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장은 사장 취임 이후 5년 만에 복귀한 정비사업 시장에서 래미안을 부활시키는 등 건설부분의 부각과 실적 우상향 등으로 연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삼성물산의 올해 예상 실적은 매출액 29조5415억원, 영업이익 9135억원, 당기순이익 1조1772억원이다. 매출은 소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상승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1000억원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