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가격 통제에 뿔난 여론···“임차인만 궁지에 몰릴 것”
더불어민주당, ‘표준임대료’ 발의···전·월세 가격 시도지사가 정한 기준 따라야 전문가들 “우리나라 임대 시장 특성상 도입 불가능···현실화 될 경우 월세 전환 가속화" “임대 공급 축소·주거 품질 하락 등 부작용···임차인 피해 불가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이나 월세를 자의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전·월세금 기준을 설정하는 내용을 포함한 ‘주거기본법 및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 했다. 정부가 직접 임대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월세 시장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임대 시장 특성상 표준임대료 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화되더라도 임대 공급 축소·주거 품질 하락 등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임차인들이 궁지에 몰릴 수 있다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임대인·임차인, 시도지사가 산정한 임대료 따라야···“과도한 임대료 인상 억제”
21일 더불어민주당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은 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이나 월세금을 시장·도지사가 정하는 ‘표준임대료’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표준임대료는 매년 용도·면적·구조 등을 고려해 표준 주택을 선정하고, 이에 따라 표준임대료를 공고하는 방식이다.
표준임대료는 시도지사가 산정하며, 임대인과 임차인은 표준임대료를 근거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 임대료를 증감할 수 있다. 임대인은 표준임대료에 이의가 있는 경우 이의신청이 가능하다. 기존 전월세 상한제와 표준임대료를 함께 시행해 빠져나갈 구멍 없이 임대료가 폭등하는 것을 막는다는 게 법안 취지다. 이 밖에도 개정안에는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청을 거절할 수 없도록 했고 계약기간은 최장 6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윤 의원 측은 “최근 임대인의 과도한 전세값 인상 요구와 치솟는 주거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임차인과 가족들이 2년마다 쫓겨나듯이 생활권을 변경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며 “독일·영국·프랑스 등 여러 선진국들은 1960~70년대부터 임대차계약기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 임차인들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이에 따라 임차인이 6년간 안정적으로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고 표준임대료를 근거로 임대료와 임대료 인상률을 정해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전·월세 시장 특수성 고려해야···표준임대료 도입 사실상 불가능“
다만 법안이 실제로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 전·월세 시장 시스템 상 표준임대료를 산정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같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도 입지나 건물에 따라 임대료가 천차만별인 만큼 기준을 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객관적인 임대료를 산정하려면 전·월세 관련 거래 정보가 충분히 축적돼 있어야 하지만 전·월세 신고제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다. 2015년 서울시가 급등하는 전셋값을 우려해 표준임대료를 추진한 적이 있지만 비슷한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또 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며 제시한 해외 사례도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준 임대료와 유사한 개념인 영국의 공정 임대료는 산정 방식 논란으로 이미 유명무실한 상태로 주거급여(바우처) 산정 기준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임대료 규제 정책을 앞서 채택한 독일 베를린이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선 임대 시장의 급격한 축소를 불러일으키며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표준임대료는 월세 단일 시장인 해외에서도 논란이 많은 접근 방법이다”며 “월세 단일 시장에 기초한 해외 임대료 통제 방법과 우리나라 전·월세 시장에 기초한 임대료 통제 방법은 같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임대료라고 하는 게 전·월세 두 가지로 가고 있기 때문에 표준임대료를 산정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다”며 “서울시도 몇 번을 시도했다가 잠정적으로 접어둔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임대 수익률 떨어지면 주택 품질 하락 불가피···결국 세입자들만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 몰릴 것”
전문가들은 표준임대료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고유한 전세 제도가 점차 없어지고, 월세 시장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임대 공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교수는 “전세보증금이 1년 새 10% 이상 급등한 전세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임대인들은 기존 적정 수준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월세 계약으로 전환하려고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행 초기에는 전·월세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겠지만, 향후 임대 공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전·월세 통제의 부작용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은 적정 수준의 수익을 얻으면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하지만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임대인이 집 수리를 하지 않게 되고, 주택 품질이 계속 나빠지면서 서민들은 더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유재산권 규제 직전 임대료가 급등할 우려도 있는 만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인 발의 소식에 시민들 사이에선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실제로 ‘입법예고 등록의견’ 게시판에는 현재 12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등록된 상태다. 한 시민은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고 갱신 기간도 길다면 누가 임대인을 하겠나”며 “임차인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엔 임대인을 없애 임차인을 궁지에 모는 법안이다”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이어 “국가가 임대주택을 공급하면 되지 개인의 재산을 국유화하려는 것은 명백한 사유재산권 침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