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투자’ SK이노, ‘배터리명가’ 삼성SDI 턱밑추격이 갖는 의미

4月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SK이노, 사상 처음으로 삼성SDI 점유 우위 삼성SDI, 소형·중대형·ESS 등 기술력 강점···생산량급증 후발주자 SK이노

2020-06-17     김도현 기자
삼성SDI 대표이사 전영현 사장,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김준 사장. /그래픽=시사저널e DB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으로 대표되는 국내업체들 간 경쟁도 마찬가지다.

LG화학이 1강으로 자리매김 한 가운데,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간 신(新) 경쟁체제도 시장의 이목을 끈다. 이들 두 회사는 저마다 다른 성장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확연한 대비된다. 전기차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배터리사업 전반의 경쟁이 격화될 조짐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3.5%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0.1%p 차이로 6위를 차지했다. 4월까지 누계 점유율을 보면 LG화학이 25.5%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5.6%·4.2%의 점유를 보여 5·7위를 나타냈다.

이번 조사결과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것은 SK이노베이션의 점유확대다. 해당 집계가 시작된 이래 월간 배터리 점유율 조사서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누계 순위에서도 지난해 9위를 맴돌던 SK이노베이션이 점유율을 상당히 끌어 올리며 삼성SDI의 턱밑까지 추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점유율 추격의 원동력은 투자였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9월 충남 서산공장에서 배터리 양산에 돌입한 가운데 △헝가리 코마콤 △중국 창저우 △미국 조지아 등에 전진기지를 구축 중이다. 해당 공장들이 속속 가동을 시작하고 공장 수율이 개선되면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점유율 또한 급성장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가동 중인 공장은 충남 서산과 헝가리 1공장 등이다. 신·증설이 마무리되는 오는 2022년에는 연간 40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지니게 된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것과 맞물려 판매량과 점유율 등의 개선이 기대된다. 제약·바이오 사업과 더불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점찍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만큼 추가적인 투자도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방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선발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SK이노베이션과 달리 삼성SDI는 견고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판매량 및 점유율을 확대하는 노선을 걷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중대형전지)뿐 아니라 소형배터리 분야 및 ESS 부문에서도 세계 최정상급 기술노하우와 점유율을 자랑하며 전반적인 배터리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여 온 업체다.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와 점유격차를 좁히거나 일시적으로 앞설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은 지난해부터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만들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상황이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생산량이 확대될수록 빠른 속도로 점유율이 치솟을 것이란 해석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이번 점유율 집계를 두고, 관련업계 안팎에서는 단순히 국내 2위를 가려내는 스포츠중계 방식의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꼬집었다. 한·중·일 3국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99%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강점이 확실하며, 확연히 다른 사업적 행보를 보이는 두 업체의 선전에 대한 조명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CATL이 1위를 고수한 가운데 한국의 LG화학과 일본의 파나소닉 등이 번갈아가며 2·3위를 차지했었다”면서 “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내수가 급감하면서 전기차 등 전체적인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했는데, 이 역시 LG화학이 1위로 올라서게 된 배경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고 해서 LG화학의 점유율 1위 등극이 저평가 될 일도 아니며, 단순히 점유율만 높다고 해서 후순위 업체들보다 높은 기술력을 방증하는 것 또한 아니다”면서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초기 반도체 시장과 같이 치킨게임이 이뤄지고 있으며, 각 업체는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되기 위해 생존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익 등을 고려했을 때 최적의 시나리오는 국내 3사가 치열한 경쟁관문을 뚫고 글로벌 배터리 선도업체로 자리매김해 다양한 부가가치를 우리가 누리는 것”이라면서 “경쟁력은 경쟁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 일정수준 이상의 포지셔닝에 성공한 LG화학을 제외한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두 회사 간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고 시사했다.

한편,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의 경쟁은 다른 배터리 사업 분야로도 옮겨 붙을 전망이다. ESS 분야에 SK이노베이션 역시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ESS는 정부의 지원 아래 선제적으로 사업에 나섰던 삼성SDI·LG화학 등 국내 기업들이 선도해 온 분야다. 최근 북미·중국·호주 등에서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말 SK이노베이션은 ESS 사업진출을 공식화했다. 전기차에 국한됐던 배터리사업을 확장시킨다는 ‘Beyond EV(전기차를 넘어)’ 전략의 일환이다. SK이노베이션은 CEO 직속 ESS TF를 ESS사업부로 재편했다. 삼성SDI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국내 ESS 시장의 45%를 점유 중이다. 경쟁업체인 LG화학을 근소하게 앞지르며 1위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