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각 세우는 은행권···금감원 권위는 상실했나
키코 등에서 금감원에 대립각 세우는 은행권 금감원 밀어붙이기 식 태도 더 이상 안 통할 수도 은행 거부 반복되면 당국 권위 상실은 불가피해
“거부하면 입장이 난처한 쪽은 금감원 아니겠습니까.”
한 시중은행 관계자가 키코와 관련해 내놓은 속내다.
올해 은행권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키코 배상 문제는 시중은행들의 거부로 결론이 났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도 “금감원도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강제력 없는 분쟁조정안을 은행이 불수용하면 그대로 끝나버린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설명이다.
그럼 금감원이 그저 보여주기 식으로 키코 문제를 6개월여 동안 끌어왔단 말인가. 물론 금감원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은행들은 이미 이 사태에 대해 “안 될 걸 알면서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감원 위상이 추락했다는 것이 이 말의 진짜 의미다.
키코 배상 문제는 6개 은행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의 거부로 일단 결론이 났다.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이 먼저 불수용 입장을 냈고, 다른 은행들이 최근 같은 입장을 전했다.
금감원은 키코에 불완전판매가 있었던 만큼 피해 기업들에 배상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지난 2013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은 불인정했지만, 불완전판매로 인한 은행의 책임은 사례별로 인정했다는 것이 금감원 입장이다.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끝난 사안이라도 불완전판매 배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주주 배임 우려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금융위원회도 유권해석을 내놓고 키코 배상은 은행법에 따라 배임 혐의와 관련 없다고 밝혔다.
이런 유권해석까지 더해지자 은행은 궁지에 몰린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은행은 당시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이미 적절한 보상이 있었다고 설명했고 특히 배상해야 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면 배상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문제는 이런 거부가 키코에 대한 거부만 아니라 감독당국 자체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다른 사안에서도 금감원과 각을 세우고 있다. DLF 제재와 관련해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월 손태승 회장의 중징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하나금융지주도 함영주 부회장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행정소송에 나섰다.
과거 금감원이 금융사 최고 경영자 등에 중징계를 내릴 경우 관련자들이 일단 이를 수용하고 사퇴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지금은 ‘버티겠다’는 것이다. 키코 논란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거부하면 입장이 난처한 쪽은 금감원이다”라는 말이 은행에서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의 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발생한 피해에서 금융소비자의 속타는 상황만 연장될 뿐이다.
은행은 이런 태도를 계속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의 원인과 해답은 금감원이 찾아야 한다. 이전처럼 밀어붙이기 식으론 은행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금감원이 밀어붙일 거라면 제대로 밀어붙여서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사안에 채찍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당근을 제시하는 방법을 써도 될 것이다. 피해자만 구제할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라고 안 쓸 이유가 있겠는가.
지금 키코만 보면 꼭 당국이 ‘은행이 말을 들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금감원은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로만 보인다. 키코 관련 은행협의체가 만들어진다고 거부 의사를 밝힐 은행이 배상 의사로 결론을 바꿀 리도 없다. 금감원의 위상만 더 무너지는 결과만 예상된다. 결국 피해자들은 더워지는 날씨 속에 더 타는 목마름을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