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기업 대출 중 석유화학 급증···연체 우려 없나?

1분기 5대 은행 대기업 대출, 전분기 대비 22.4%↑ 신한은행 석유화학 업종 대출 65.9% 급증 “작년 업계 불황 이은 코로나19 영향에 대출 증가”

2020-05-04     이용우 기자
시중은행 로고. / 사진=연합뉴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석유화학 업계의 대출이 유독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 업종이 다른 업종보다 경영상 더 어려워지자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현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 대출 연체와 관련해 은행업계는 현재 우려할 수준은 아니나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대표 시중은행인 신한은행의 1분기 대기업 대출은 16조199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약 2조원(15.5%) 증가했다. 

대기업 대출을 세부별로 보면 올해 1분기 들어 제조업 대출이 전분기보다 21.3% 늘었다. 제조업 가운데서도 석유화학 업종 대출 잔액이 1조592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65.9% 크게 증가했다. 석유화학에 이어 도매 및 소매업종의 대출이 같은 기간 21.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에서 대출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필요했다는 의미”라며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은행의 대기업 대출이 이례적으로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의 대기업 대출은 매달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4월 말 기준으로 88조2537억원을 기록하며 전분기보다 22.4% 증가했다. 전달과 비교하면 5조5515억원(5.4%) 증가했다. 대기업 대출은 3월 말에도 전달보다 1조7819억원(2.3%) 증가한 바 있다. 

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올해 대기업 대출 증가 추이. / 도표=시사저널e

석유화학 업계는 작년부터 어려운 상황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선 코로나19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 감소, 공장 가동 일시 중단 등을 겪으면서 은행에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일 공개한 ‘공시대상(자산 5조원이상)·상호출자제한(10조원이상) 기업집단 경영실적’에 따르면 64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작년 매출(1401조원)은 전년보다 1.5%(20조원) 줄었다.

특히 반도체와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컸다. 반도체·석유화학에 주력하는 삼성(19조7000억원↓), SK(14조7000억원↓), LG(3조5000억원↓)의 순이익 감소 규모가 컸다. 반면 현대차(3조8000억원↑), 두산(1조3000억원↑), 포스코(8000억원↑)의 순이익은 증가했다. 

불황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의 대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은행권은 대출 연체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국내 은행의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평균 0.38%로 가계대출 연체율(0.30%)과 비교해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0.58%)보다는 낮았다.  

다만 올해 들어 대기업 대출이 가파르게 늘었고 회사당 대출 규모도 중소기업보다 커 부실이 발생할 경우 은행의 연체율 상승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도 담보를 통한 대출이 많고 현재 연체율도 1%를 넘지 않아 크게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다만 대기업들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대출 연체율이 치솟을 수 있다. 면밀하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