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놓인 대한민국 최장수기업 ‘두산’

두산솔루스 매각, 채권단 만족시키기에는 부족···다음 선택지 관심 페놀유출 후 30년만의 존립위기···이를 계기로 ‘소비재→중공업’ 체질개선

2020-04-11     김도현 기자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내 최장수기업 두산그룹이 흔들리고 있다.

2009년 일산 위브더제니스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촉발된 자금난이 두산건설을 덮쳤다. 10년여 간 두산건설을 지원했던 두산중공업의 여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원을 추가 지원받는 대가로 그룹 전반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1조원을 웃도는 자구안을 요구 중이다. 최근 알려진 두산솔루스 매각 역시 채권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있다. 두산솔루스와 함께 독립한 두산퓨얼셀을 비롯해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 등 그룹의 핵심사업들의 매각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그룹의 근간인 두산중공업을 지키기 위해 그룹의 미래를 저당잡힌 꼴이 됐다. 매각이 추진 중인 두산솔루스는 그룹 지주사 ㈜두산의 사업부문이었다가 지난해 두산퓨얼셀과 함께 독립법인으로 인적분할됐다. 두 회사 모두 전도유망한 사업분야에 핵심 소재를 납품하는 사업을 영위 중이다. 그룹의 미래로 불렸던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룹에 불어 닥친 부진의 늪을 헤치는 동안 버팀목이 됐던 두산밥캣과 두산인프라코어에 불어닥친 불확실성도 해결해야 할 난제다. 그룹 안팎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이들 두 곳을 두산솔루스·두산퓨얼셀 등보다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계열사로 분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단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나름의 ‘방어 순위’를 구축한 셈인데, 어느 선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 관심이 고조된다.

일각에서는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탈바꿈한 체질개선의 궁극적 실패라 지적한다. 두산그룹의 시작은 박승직 창업주가 서울 종로4가에 건립한 ‘박승직 상점’이다. 이후 두산은 한 세기동안 대를 거듭하며 소비재 중심의 사업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OB맥주’로 대표되는 주류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1년 두산전자(현 두산 전자BG)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은 그룹의 대대적 변화의 전환점이 됐다. OB맥주 등 두산이 영위하는 소비재들에 대한 전국민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룹의 존폐에도 위기가 엄습했다. 창사 후 최대 위기였다. 두산그룹은 장고를 거듭하다 체질개선에 나섰다. 그룹의 상징이던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버거킹·KFC·네슬레·코닥·3M 등을 차례로 시장에 내놨다.

매각을 통해 마련된 자금은 중공업그룹으로 변화하는 데 종잣돈이 됐다.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을 설립했다. 이를 시작으로 영국의 밥콕, 루마니아의 IMGB, 체코의 스코다파워, 독일의 AE&E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당시의 인수가 기틀이 됐고, 더해진 투자와 각고의 노력 끝에 원전·가스터빈·수처리·신재생에너지 등에서 독자적 기술·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 같은 전례를 이유로, 업계는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을 지키고 이를 바탕으로 후일을 도모하는 방식의 선택지를 취할 것이란 전망이 지대하다.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평가가 있었음에는 분명하지만, 혁신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그룹의 역사를 지속시킨 선대 회장들을 답습할 것이란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평가는 결과론적이며, 시기에 따라 상당히 상이해질 수 있기 마련”이라며 “소비재사업이 잔존했다면 유동성 위기를 덜 겪을 수 있었을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만약 소비재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중공업 그룹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수자금 마련에도 실패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오늘날 두산이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30여년 만에 재발한, 그룹 존립을 위협하는 위기상황에 맞서 오너일가와 및 그룹 경영진들이 어떤 선택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크다”면서 “혁신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생존력을 키운 전력이 있는 회사인 만큼, 시장이 놀랄만한 과감한 선택지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