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철강·해운·화학, 두터웠던 ‘금녀의 벽’ 깨져간다

‘女임원 1명’ 현대차, 70년대생 이인아·이형아·송미영 상무 나란히 임명 포스코선 제철소 최초 女임원 탄생···현대상선 최초 女선장·기관장 배출

2020-01-04     김도현 기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현대차 이인아·이형아·송미영 상무, 듀폰코리아 이복희 대표, 현대상선 전경옥 선장, 포스코 김희 상무. / 사진=각 사

자동차·중공업·해운·화학 등 전통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은 분야에서 여성들이 약진이 돋보이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관련업체마다 여성들을 요직에 배치하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올해 세 명의 여성임원이 탄생했다. △현대차 제네시스고객경험실장 이인아 상무 △현대차 지역전략팀장 이형아 상무 △현대·기아차 인재개발1실장 송미영 상무 등이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이화여대 출신일뿐 아니라 1970년대 생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인아 상무가 1973년생, 이형아 상무가 1970년생, 송미영 상무가 1976년생이다.

현대차그룹은 비슷한 규모의 기업들에 비해 여성임원이 극히 적었던 것이 특징이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대차 여성임원은 461명 중 1명(0.9%)이었으며, 기아차 역시 157명 중 1명(0.6%)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곳에서 한 해에 무려 세 명의 여성임원이 탄생한 까닭에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현대차의 변화’라기 보다 ‘사회적 변화’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여성 입사자들이 대거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이들이 임원반열에 올라설만한 시기가 됐고, 과거와 달리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는 문화도 상당수 사라졌다는 점에서 점차 여성임원들의 비중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 소개했다.

이 같은 변화는 마찬가지로 남초 현상이 도드라졌던 다른 업계서도 비슷하게 부각되는 양상이다. 포스코에서는 사상 최초의 제철소 현장직 여성임원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김희 상무다. 김 상무는 1990년 포스코 여성공채 1기로 입사했다. 여성공채 1기들 중 김희 상무에 앞서 임원에 올라선 사례는 있었지만, 모두 사무직 출신이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남성들이 요직을 점했던 화학업계도 여성들의 진입장벽이 완화되는 추세다. 세계 최대 화학업체 ‘듀폰(DuPont)’의 한국법인 듀폰코리아는 지난 1일자로 대표이사에 이복희 듀폰 전자&이미징그룹 이미지솔루션 사업부 신성장총괄(전무)를 임명했다. 이복희 신임 대표는 듀폰코리아 사상 최초의 여성 대표다.

‘금녀의 벽’이 두터웠던 해운업계서도 변화가 포착됐다. 현대상선은 최근 고해연 기관장과 승선경력 11년차의 전경옥 선장을 차례로 임명했다. 중동항로에 투입된 ‘현대 커리지(HYUNDAI COURAGE)호’에 승선 중인 전 선장과 인도항로에서 운항 중인 ‘현대 콜롬보(HYUNDAI COLOMBO)호’에 투입된 고 고관장은 각각 국적선사 최초의 여성 선장·기관장이다.

선박에서 선장은 모든 승무원을 지휘·통솔하고, 선박의 안전 운항과 선적화물 등을 관리하는 최고책임자다. 기관장은 선박 기관의 정비·운전, 연료의 보관·사용 등 기관실 전체에 관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며, 특히 기관의 안전 운용과 선박 운항에 관해 선장을 보좌하고 협조하는 역할을 한다.

전경옥 선장은 “해양대학교에 여성들의 입학이 허가된 지 30년 만에 여성 선장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다소 늦은감이 있다”면서도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여성캡틴이 탄생했고, 그 출발이 현대상선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며 조직에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고 시사했다.

이어 전 선장은 “여전히 바다는 여성에게 좁은 문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성별을 이유로 기회 자체를 박탁하거나 차별하는 관행이 깨지길 바란다”면서 “10년 후에는 많은 여성후배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기를, 더 이상 여성 선장이 탄생하더라도 기사화 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