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과열 못 잡는 공매도···무용론 지적도

에이치엘비 주가 3배 오를 때 공매도도 급증···‘주가 거품 제거’ 순기능 못 해 정치권에서도 공매도 무용론 제기 외국인 등 세력들만 공매도 투자···개인 투자자는 2% 미만만 활용 

2019-10-23     이용우 기자
에이치엘비 최근 주가 흐름. / 사진=키움증권HTS

주가가 한 달 만에 세 배 오른 에이치엘비에 공매도가 넘쳐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주가 급등에 따른 투자 손실을 우려해 버티기에 나선 상황이다. 이에 시장에선 주가 과열을 안정시키는 공매도의 순기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공매도 ‘무용론’을 제기한다. 또 공매도가 외국인과 기관 등 자금력을 가진 세력의 주가 상승 억제 수단으로만 이용돼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에이치엘비는 한국거래소에 의해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고 이날 하루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에이치엘비는 지난 22일 7.75% 오른 18만800원에 장을 마쳤다. 주가는 10월1일 6만9000원에서 이날까지 162.02%가 올랐다. 16거래일 만에 주가가 3배가량 뛴 것이다. 앞서 에이치엘비는 항암신약 ‘리보세라닙’ 임상 관련 호재로 주가가 급등했다. 

에이치엘비 계열사들의 주가도 연일 급등세다. 에이치엘비파워와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은 이날 상한가를 기록했다. 에이치엘비와 마찬가지로 계열사들도 10월 1일 이후 주가가 3배가량 치솟았다. 특히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은 지난 22일 거래정지가 된 후에도 다음 날 장이 시작하자마자 주가가 17% 이상 올랐고, 투자금이 몰려 상한가를 기록했다. 

에이치엘비와 계열 기업들이 매매거래 정지를 받을 만큼 주가가 과열돼 있지만 공매도 역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선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가 거품을 방지하는 기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 공매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이를 되사 차익을 남기는 투자 방법이다. 시장에선 공매도가 과도한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자금을 가진 투자자들에 의해 상승해야 하는 종목까지 공매도 탓에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에이치엘비의 공매도 및 대차거래 잔고 추이. / 그래프=조현경 디자이너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에이치엘비의 22일 기준 누적 공매도량은 18만8312주로 코스닥에서 6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공매도 거래대금도 3625억원으로 10월 들어 가장 많았다. 

일각에선 에이치엘비 주가가 이 종목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투자자들의 숏커버링(공매도한 주식을 갚기 위해 다시 매수하는 것)으로 급등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공매도가 걸려 있는 셈이다. 에이치엘비의 공매도 투자자는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메릴린치·크레디트스위스 등 대부분 외국계 투자은행(IB)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달간 공매도 거래 평균 체결가는 8만6385원으로 이날 종가(18만800원)로 숏커버링했다면 100% 이상 손실을 보게 된다. 이에 공매도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계속 공매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 상황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에이치엘비의 경우 공매도가 맞물리면서도 과열이 식지 않고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며 "주가가 너무 올라 숏커버링하지 못하고 주가 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공매도가 이 종목에선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공매도 무용론이 제기됐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공매도 시장 일부분을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공매도 시장에서 업틱룰 예외 규정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업틱룰은 공매도 집중으로 인한 주가 하락 가속화와 투자심리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직전 가격 이하로 공매도 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거래소의 업무규정이다.

공매도 문제가 더 불거지는 이유는 공매도 시장에서 개인은 대부분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자금력을 가진 투자자들에 의해서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공매도 시장에서 기관 및 외국인 투자자의 일평균 거래대금 비중은 코스피 99.2~99.6%, 코스닥 98.1~99.3%였다. 개인 투자자는 2% 미만이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는 매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며 “다만 다른 나라도 공매도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전면적 폐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국도 공매도 규제에는 신중한 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