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샤 평행이론? 포지셔닝 실패 반복한 현대차
제네시스 G80과 그랜저IG 사이서 갈 길 잃은 아슬란…올해 월평균 판매량 47대, 끝내 ‘단종’
현대차가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독립을 1년 앞둔 2014년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으로 내놓은 ‘아슬란’을 완전 단종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단종설을 현대차는 지난 7일 공식 확정했다. 아슬란은 연간 판매목표 절반을 채우지 못한 2015년부터 지난해, 올해까지 계속해서 판매가 줄었다. 일각에선 현대차가 중형 세단 마르샤에서 겪은 실패를 반복했다고 지적한다.
14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아슬란은 올해 들어 11월까지 총 517대가 팔렸다. 월평균으로는 47대가 팔린 데 그친 셈이다. 지난해 월평균 판매량 77.9대의 60% 수준이다. 현대차는 월평균 50대가 팔리지 않는 아슬란의 생산 고정비 부담을 결국 털어내기 위해 단종을 결정했다. 지난해 “현대차 기함인 아슬란 단종은 절대 없다”고 강조했던 현대차는 1년 사이 단종으로 돌아섰다.
아슬란은 처음부터 위험했다. 현대차는 12월 7일 아슬란 단종을 공식 발표했지만, 지난해부터 꾸준히 단종설이 불거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운영하는 데이터랩 검색어 트렌드에 따르면 아슬란 단종설은 지난해 6월 1일 정점을 찍었다. 아슬란은 2015년 연간 판매량 8629대를 기록, 판매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1~5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87대에 그쳤다.
실제로 2016년 하반기, 아슬란 단종설에 급격히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2016년 7월 현대차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대형 세단 ‘G80’(기존 DH제네시스 부분변경 모델) 출시를 앞뒀고, 같은 해 11월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IG’ 출시 방침을 정하고 나서면서다. 제네시스 G80은 출시 이후 월평균 4134대씩 팔려 나갔다. 현대차 그랜저IG는 2016년 11~12월 총 1만8439대가 팔렸다.
아슬란은 G80과 그랜저IG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불거진 단종설에 대해 절대 단종은 없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판매량이 적어 모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손해지만,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출시 이후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이 된 아슬란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는 아슬란 부분변경 모델 개발에 착수해 올해 9월 시장에 내놓기도 했지만, 이달 끝내 단종을 결정했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아슬란 제품 포지셔닝(Positioning)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시스와 그랜저IG 사이에 놓인 애매한 포지셔닝 문제를 현대차는 가격 할인으로 극복하려 했다”면서 “브랜드 가치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 입장에선 돈을 조금 더 내 제네시스 G80을 사는 게 낫고, 같은 값이면 그랜저IG를 사는 게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가 제품 포지셔닝 실패로 단종을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차는 1997년 중형 세단 마르샤를 1세대로 마감했다. V6 2.5ℓ 엔진을 탑재한 마르샤는 쏘나타와 그랜저를 잇는 고급 세단이었지만, 쏘나타의 인기로 2세대 모델 없이 단종됐다. 현대차는 마르샤에 더했던 고급화 요소를 쏘나타로 넘겼다.
현대차는 마르샤와 같이 아슬란을 단종하고 그랜저IG에 쏘나타에 했던 고급화 작업을 재전개하는 작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슬란 단종으로 플래그십 세단 자리를 물려받는 그랜저IG가 지나치게 젊은 이미지를 가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탓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의 최상위 트림이 추가될지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전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는 국내 1위 완성차 업체라는 의무감으로 고객 선택폭 확대를 위해 판매가 부진한 차종이라해도 일부 유지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슬란과 같은 포지셔닝 실패 차종이 단종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며 “국내 판매가 적어도 단종을 피하기 위해선 해치백 i30와 왜건 i40와 같이 해외 판매라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