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매운동’ 직격탄 맞은 유통기업
日 유키지루시 사례 되새겨야…소비자 불매운동 가볍게 보지 말아야
2017-11-16 박지호 기자
읽다가 관뒀다. ‘한샘 성폭행 피해자 원글’을 읽고 있자니 누가 내 속을 휘저은 듯 메스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면해야 했다. 유통 출입기자로서 한샘 사건과 ‘정면 충돌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직업 의식은 너무 거창해서 틀렸다. 여성이자 소비자로서 사건을 낱낱이 봐야 한다는 도리, 부디 거짓 한 올 없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주문 혹은 기도. 오히려 이 쪽이 솔직해서 맞다.
이렇듯 기자가 업체와 소비자 입장을 오가며 어리바리하는 동안, 온라인에서는 이미 불매운동의 각오가 번지고 있었다. “소비재를 파는 기업이 이렇듯 비윤리적이었다니 본 떼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 소비자는 그렇게 너그러운 존재가 아니다”에서 촉발된 한샘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의지이자 소비자 간 의리였다.
현재 BBQ도 불매운동의 복판에 있다. 마치 기시감이 드는 듯 BBQ에서 호식이두마리치킨으로, 호식이에서 미스터피자로 회사 이름만 갈아 끼워 본다. 이 모두 ‘오너 리스크가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사례’라는 데 맥을 같이 한다. 갑질 논란 보도 이후 BBQ는 해명자료를 내고 가맹점주에 대한 윤홍근 회장의 갑질은 사실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서 싹 트기 시작한 반감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사건의 진위에 따라 불매운동의 경중 역시 갈리겠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기업이 불매운동과 마주할 수 있다는 가정은 이미 정설이자 교훈이다. 기업 자체가 문제일지 기업을 운영하는 인간 지능이 문제일지, 교훈은 애석하게도 쉽게 잊히고, 다시 ‘불매’라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타격입는 기업은 여지없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업을 상대로한 불매운동을 두고 “어차피 금방 까먹을 불매운동, 또 시작이다”이라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이는 어차피 배고플 거 수고롭게 밥은 왜 먹느냐는 체념과 같다. 불매운동은 사고 기업에 대한 경제 보복이기 이전에 징벌이다. 동시에 국민을 대상으로 돈 벌어먹고 살려면, 사람 어려운 줄 알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일본은 비윤리적 기업이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경험을 갖고 있다. 2000년 유키지루시 유업의 유제품을 먹고 1만명 이상이 식중독에 걸렸을 당시, 일본 국민들은 분노했지만 회사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줬다. 하지만 2002년, 일본 햄과 소시지 시장의 86%를 점유했던 유키지루시 식품은 수입쇠고기를 국산쇠고기로 둔갑시킨 것이 드러나 일본 소비자들의 철저한 외면에 못 이겨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우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경험칙을 얻는다. 결국 기업이 할 일은 간단하다. 불매운동 억울해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기. 그리고 발빠르게 후속 대처하기. 동시에 변명은 일체 금지. 이 세 가지가 자주 뭉개지는 경험을 경험칙처럼 되뇌는 우리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의 윤리 선언을 신뢰하지 못한다. 논란이 불거질때에만 회장이 빼꼼 나와 조직문화 쇄신을 외치는 식의 수습은 수 십년 째 돌고 도는 돌림 노래여서 이미 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