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 효자 역할하는 ‘아이돌 마케팅’의 진화

‘아이돌 굿즈’ 시장, 1000억원대 추정…아이돌 모델 직접 기용 이어 자사 채널 활용해 고객 유인

2017-11-14     박지호 기자

직장인 윤예지(26)씨의 ‘본진’(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은 워너원이다. 그 중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황민현이다. 윤씨는 최근 워너원이 광고한 이니스프리 제품을 구매했다. 당장 필요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구매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다. 

 

윤 씨는 “당장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내 최애의 얼굴이 담긴 여러 장의 포스터와 제품을 주기 때문에 구입할 의사가 선뜻 생긴다”며 “또 멤버 수가 많다보니 내 최애가 아닌 다른 멤버의 포스터나 제품을 구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내 최애 제품을 가진 다른 팬과 교환하면서 친목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멤버가 내 최애’라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기 위해서 남들이 가지고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쯤은 당연히 나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어떤 압박감 때문에 구매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른바 ‘아이돌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을 활용한 마케팅 방식이 다변화하고 있다. 제품 광고 모델을 아이돌로 기용하거나 브로마이드와 팬 싸인회 티켓 등으로 판매를 촉진하던 기존의 기존 마케팅 방식에 더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과 손잡고 단독 투표 채널로 나서는 등 아이돌 팬덤을 사로잡기 위해 유통업계가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돌 굿즈(Goods·아이돌 파생 상품) 시장 매출 규모는 연간 1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유통업계에서는 아이돌을 활용한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 받는 아이돌 그룹은 방탄소년단, 워너원, 트와이스 등이다. 이들은 10대뿐 아니라 20~30대의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무대 위 본업 말고도 광고 시장 등 ‘장외’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6월 종방한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2’의 데뷔 그룹인 워너원은 공식 데뷔 이전부터 큰 관심을 받으며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롯데리아, 이니스프리 등 패션·뷰티·음료 분야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이니스프리(www.innisfree.com)가 아이돌 그룹 ‘워너원(Wanna One)’과 장기 모델 계약을 체결했다./사진=아모레퍼시픽

특히, 이니스프리의 워너원 브로마이드는 배포 첫 날 품절사태를 빚기도 했다. 360° VR 영상의 경우 3일 만에 조회 수 100만 건을 돌파하는 등 회사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유통업체가 제품 광고 뿐 아니라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의 단독 투표 채널로 나서며 트래픽 반등을 노리는 사례도 있다. 방문자 수가 곧 매출 확대로 이어지는 온라인 쇼핑몰의 특성상 ‘투표’를 진행함으로써 소비자를 자연스레 자사 사이트로 유인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은 지난 프로듀스101 시즌2의 단독 투표를 진행한 데 이어, 최근 KBS에서 새로 시작한 아이돌 재기 프로그램인 ‘더 유닛’의 단독 투표 역시 진행한다. 프로듀스 101 투표 진행 당시 총 누적 투표수 3200만표, 신규 가입자 36만명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더 유닛의 최종 데뷔 그룹을 선정하기 위한 투표를 단독으로 진행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 관계자는 “특히 지상파의 평균 시청률이 10%로 훨씬 높다는 점과 투표가 오직 티몬에서만 진행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더 큰 성과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유통업계가 아이돌 모델을 기용하거나 관련 프로그램을 활용한 데 적극적인 이유는 일반 배우 모델을 기용했을 때보다 이른바 ‘덕질’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타깃으로 삼는 연령층과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연령층이 딱 맞아 떨어져서 광고 효과가 극대화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이돌을 앞세운 마케팅이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부담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명 아이돌이 광고하는 고가 패딩의 경우, 구매력 없는 10대는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한 때 몇 십만원 대를 호가하던 노스페이스 패딩이 학부모들의 ‘등골 브레이커’로 불렸던 상황이 여전히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워너원과 아이오아이 멤버 소미, 트와이스 등은 각각 아이더, 잠뱅이, 엠엘비(MLB) 등 의류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중학생 자녀를 둔 김아무개씨(49·서울 성동구)는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광고하는 브랜드 패딩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야단을 쳐도 또래 사이 유행이기 때문에 계속 거절하기도 힘들다”면서 “자녀가 이 나이대 쯤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가끔은 아이돌 광고 제품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지출은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