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연례행사 재벌사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국정농단 사태로 재벌사면 부정적 이미지 팽배…“사면 요청 자체가 부담”

2017-08-14     엄민우 기자
박근혜 정권 당시 광복절 특별 사면을 받은 최태원 SK회장(왼쪽)과 이재현 CJ회장. / 사진=뉴스1

광복절 연례행사와도 같았던 ‘광복절 특사’ 소식이 올해는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사면이 불가능하다고 천명한 탓이다. 특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벌 사면의 경우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정부는 광복절에 어떤 사면도 단행하지 않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광복절 특사의 주체는 법무부이고, 사면을 준비하려면 시스템상 3개월 이상 소요 된다”며 올해 사면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원래 취임 첫해 대규모 사면을 하는 것이 관례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급하게 정권이 출범하면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사면의 꽃’은 늘 재벌 사면이었다. 최태원 SK회장​, 이재현 CJ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사면 받을 때마다 여론이 갈리며 이슈가 됐지만 여태까진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사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같은 경제인 사면이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면을 할 때 정권이 가장 고려하는 것이 여론인데, 이미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사면=기업 로비’란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더욱 몸을 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 

 

총수 사면을 경험한 한 그룹사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로 앞으론 정상적으로 사면을 부탁하는 행위 자체도 비판받거나 문제가 될 행동이 돼 버렸다”며 “이제부턴 총수가 구속되면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최태원 SK회장과 이재현 CJ회장은 전 정부에서 사면을 받았단 이유 하나만으로 국정농단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 뇌물죄가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히 이재현 회장은 병색이 짙었고 박근혜 정권 당시 오히려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수사 대상이란 얘기가 나왔다. 

 

반면 김승연 회장이 사면 받지 못한 한화는 일찌감치 수사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권의 미움을 산 기업이 사면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사면대상자는 법무부 주최 사면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되지만, 사실상 ‘윗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총수가 사면받기 위해선 기업이 물밑에서 정권 인사들을 접촉해야 하는데 이 같은 행위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됐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로 기업과 정권 간 비공식 핫라인(Hot-line)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로서 이처럼 달라진 풍토에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꼽힌다. 아직 유‧무죄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지만, 만약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사면 요청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관련 업무를 수행할 만한 곳이 미래전략실이었는데 이마저도 해체되고 수사대상이 된 상황이다.

반면 삼성이라는 기업이 가진 특수성과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성격을 고려하면 사면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란 주장도 나온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법조계 인사는 “미국 트럼프가 계속해서 투자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삼성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관련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나중엔 (이재용 부회장의)사면 필요성이 대두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