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삼성, ‘총수구속=투자 감소’ 공식 깼다
반도체 부문만 작년 2배 이상 투자…글로벌 수요 맞추고 중국 추격 따돌리기 진땀
총수가 감옥에 가면 투자가 줄어든다는 공식을 삼성전자가 깨뜨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구속돼 있지만 삼성은 반도체 분야에서 오히려 작년보다 대규모 투자를 늘려가는 모양새다. 중국의 추격과 반도체 업황이 만들어낸 결과란 분석이다.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 기업이 투자를 줄인다는 것은 한국 재계에선 하나의 공식과도 같이 여겨졌다. 총수가 권력을 거머쥔 한국 기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는 최고 경영자의 결정이 필요하다. 전문경영인들이 있지만 책임이 따르는 투자는 총수
결정에 의지한다.
옥중경영을 편다고 해도 대규모 투자를 펴는 것은 쉽지 않다. 총수 구속을 경험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옥중경영을 펼 때와 실제로 바깥에서 경영할 때 투자규모는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총수가 구속됐을 때 과감한 투자를 하는데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 예가 CJ다. 박근혜 정부의 미움을 산 CJ는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후 눈에 띄게 투자규모가 줄었다. 총수 구속 전인 2012년 사상 최대 규모인 2조9000억원 투자를 했던 CJ는 이 회장 구속 후에는 2014년 1조9000억 원, 2015년 1조7000억원 등으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반면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는 이 같은 그간의 공식을 무색케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지 6개월이 지났고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린 지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부문 투자가 두드러진다. 작년과 비교해 무려 2.5배에 달하는 투자가 올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부문 투자 규모가 31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은 13조 원이었다. 올해는 낸드에만 작년 전체 규모를 뛰어넘는 14조원이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총수 구속에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 업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낸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수요를 맞춰 나가는 차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경영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고부가제품 수요 대응을 위해 평택캠퍼스에 V낸드 증설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뿐 아니라 화성사업장, 중국 시안에도 추가로 투자를 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는 더 많이 벌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달갑지 않은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한 성격도 띄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평택에 반도체 라인을 증설하는 것은 단순 수요 대응 뿐 아니라 중국에 대응하는 차원도 있다”며 “빠르면 내년부터 중국이 메모리를 만들어낼 것이란 전망도 있어 그 전에 충분히 화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현재의 호황이 끝나는 시점을 중국이 메모리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시기로 보고 있다. 현재는 그 시점이 2019년 정도가 될 것이란 게 업계 예측인데 이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메모리를 대량으로 찍어내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그것이 곧 반도체 시장의 침체기를 의미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사업부로 따로 떼어낸 파운드리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안고 있다. 반도체 업계 새로운 효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메모리 부문만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목표는 대만 TSMC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문에만 올해 10조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은 총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대규모 투자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한 사이 권오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주요 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올해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푼만큼 내년 투자규모는 올해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