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도 돌지 않는 돈…돈맥경화 심화
본원통화 증가량 따라가지 못하는 시중유통 통화량
한국은행이 계속해서 시중에 돈을 풀고 있지만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통속도 감소가 효과를 저하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최근 발표한 '주요 통화지표의 변화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본원통화의 연평균 증가율은 12.7%나 됐다.
본원통화는 중앙은행이 화폐발행의 독점적 권한을 통하여 공급하는 통화를 말한다. 중앙은행이 예금은행에 대출을 하고 외환을 매입하는 등의 형식으로 본원통화가 공급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본원통화는 143조4천353억원이다. 2006년 말(51조8천695억원)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2.8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행이 경기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등의 노력에도 불구, 지난 2007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측정하는 지표인 현금성통화(M1·협의통화)와 예금성통화(M2·광의통화)의 증가율이 본원통화 증가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M1은 현금통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언제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예금을 의미한다. M2는 협의통화에 정기 예적금 및 부금, 시장형 금융상품, 실적배당형 금융상품, 금융채 등을 포함한다.
M1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크게 변화해왔다.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2007년 –5.2%까지 하락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선호가 증가하면서 2009년 16.3%까지 상승했다. 2012년 이후에도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M2 증가율은 역시 경기상황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증가율은 6~8% 수준으로 등락폭이 낮아졌다.
다만 보고서에서는 M1과 M2의 증가율이 최근 몇 년 간 상승세에 있음에도 본원통화 증가량에는 못 미쳐 실제 유동성 공급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분석했다.
그 원인으로는 통화유통속도 감소가 꼽혔다. 통화유통속도는 2000년 이후 0.87∼0.94배를 보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승수와 동일하게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2016년 0.7배까지 떨어졌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국민총생산(GDP)을 통화량으로 나눈 수치로, 한 나라의 경제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번 사용됐는지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의 신용창출기능과 자금중개기능이 약화하며 금융부문에서 실물부문으로 자금 이동이 저하되었고, 이에 통화유통속도가 감소했다.
지속적인 통화 완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통화유통속도의 감소 때문으로 봤다.
다만 향후 경제가 회복되어 통화유통속도가 상승하는 경우 시중에 공급된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